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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지 Aug 28. 2020

재미없는 딸

 우리 집엔 두 명의 딸이 있다. 나보다 세 살 많은 언니와 나. 어릴 때부터 우리 자매는 쌍둥이처럼 다녔다. 연년생도 아니고 세 살의 나이 차가 있지만, 엄마는 우리 둘에게 사이즈만 다른 옷을 똑같이 사서 입히셨다. 두툼한 보라색 스웨터가 그랬고, 하늘거리는 프릴이 달린 여름 원피스가 그랬다. 옷을 두고 서로 시샘하거나 비교할까 봐 걱정하신 엄마의 마음이 담긴 옷들이었다. 하지만 비록 같은 옷을 입고 자란 자매이더라도 그 속까지 같을 리는 만무했다.     




 엄마는 어린이집에서 일하셨다. 아이들이 먹을 간식을 만들고 밥을 짓는 일을 하셨다. 어린아이들의 목에 걸리지 않도록 재료들을 잘게 다지고, 데이지 않도록 뜨거운 국을 식히고, 식기들을 소독하는 게 엄마의 일이었다. 엄마는 그 일을 사랑했다. 어린이집 조리사는 엄마가 마지막으로 가진 공식적인 직업이었다. 그곳에서 일하기 전에는 여러 식당과 공장들을 전전하셨다. 어린이집에서는 술에 거나하게 취해 호통을 치는 손님도 없었고, 국수 뽑는 기계에 장갑이 말려 들어가 크게 다칠 뻔한 일도 없었다. 무엇보다 예쁜 아이들이 있었다. 한평생 음식을 만들며 주방에 살았던 우리 엄마에게 봄의 연둣빛 새싹 같은 아이들이 ‘조리사 선생님, 오늘 밥은 뭐예요? 조리사 선생님, 맛있어요!’라는 따뜻하고 고운 말들을 해주었다.      


 올해 2월이 엄마의 마지막 출근이었다. 어느덧 나이가 예순이 넘어 더는 어린이집에서 일할 수 없게 되었다. 관절이 안 좋아 고생하던 엄마가 드디어 일을 쉬게 되어 기쁘기도 했지만, 엄마에게 파도처럼 밀려들 갑작스러운 공허함이 염려되었다. 그런 엄마에게 새롭게 생긴 직업은 ‘할머니’였다. 그동안 직장에 출근하느라 잘 봐줄 수 없었던 손주들을 실컷 돌봐주게 되신 것이다. 며칠간은 큰딸의 집에서, 또 며칠간은 작은딸의 집에서 병아리 같은 손주들을 돌보시며 시간을 보냈다. 그 시절 아들도 없이 딸만 둘 낳아 길렀던 엄마는 묘하게도 그 딸들이 낳은 아들들을 만나게 되었다.      




 근래는 출장이 잦은 남편 때문에 엄마가 우리 집에 오셨다. 엄마는 새벽부터 분주하셨다. 빨래를 돌리고, 설거지하고, 아기를 보고, 음식을 만드셨다. 나는 엄마가 그렇게 하는 게 싫었다. 엄마가 우리 집에 와서까지 일하고 고생하는 모습을 보기 싫었다. 빨래를 개려는 엄마에게 내가 할 테니 쉬라고 하고, 저녁으로 무엇을 만들까 고민하는 엄마에게 그냥 냉장고에 있는 걸 꺼내 먹자고 하고, 아기에게 줄 밥을 해주겠다는 엄마에게 이미 만들어 놓은 게 있으니 그걸 먹이겠다고 했다.      


 며칠 전이었다. 언니가 엄마에게 전화했다. 워킹맘인 언니는 엄마에게 아기가 먹을 반찬과 국을 만들어 택배로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갑자기 장을 보고 국과 반찬들을 만들어 담고 부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기에 옆에서 지켜보던 나도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 걱정은 기우였다. 엄마의 얼굴엔 생동감이 넘치고 몸은 가뿐해 보였다. 딸과 손주가 먹을 음식을 만드는 일이 몹시도 기뻐 보였다.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는 내게 ‘이것이 엄마의 기쁨이다.’라고 대답하셨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여태껏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엄마 속도 모르는 재미없는 딸이었음을.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나는 뭐든 스스로 하려고 하고 누구의 도움도 받기 싫어했다. 걱정과 고민거리도 부모님께 털어놓지 않고 혼자 해결하려 했다. 수능시험을 보고 대학원서를 넣을 때도 제대로 상의 한번 한 적이 없고, 남자친구를 사귀어도 말 한번 꺼내지 않았다. 엄마는 지금껏 얼마나 내 얘기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주기를, 원하는 게 있으면 있다고 말해주기를. 오랫동안 다니던 직장 생활을 마무리 짓고 적적하실 엄마에게 딸과 손주에게 자신이 무언가 해줄 수 있다는 게 몹시 값진 일이었을 텐데 그런 엄마의 마음을 몰라주고 뭐든지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딸이 얼마나 야속하게 느껴졌을까.      




 나도 아기를 낳고 키우다 보니 아기에게 무언가 해주는 기쁨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었다. 한밤중에 오랜 시간을 들여 아기가 먹을 육수를 끓이고, 이른 새벽부터 밥을 지어 차려주어도 맛있게 먹는 아기를 보면 모든 힘듦과 괴로움이 날아가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해주는 기쁨이란 그렇게 굉장하고 소중한 거였다. 엄마의 기쁨을 앗아갔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었다. 엄마의 마음도 몰라주고 몸만 편하게 해드리는 건 반쪽짜리 효도였다.


 오늘 점심에는 무엇을 먹고 싶냐는 엄마의 질문에 계란찜이 먹고 싶다고 졸랐다. 당근과 쪽파를 송송 썰어 넣고 가스 불에 보글보글 끓여 익은 계란찜이 한눈에도 먹음직스러웠다. 무엇보다 ‘그래, 엄마가 해주마’라고 말씀하시며 냉장고 문을 열던 엄마의 표정이 기쁘면서도 시리게 내 마음속에 들어왔다. 이제 점점 나이 들어가는 엄마를 편안하게 해드려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나이가 들어서도 엄마가 여전히 엄마의 역할을 즐길 수 있도록 한 공간을 비워드려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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