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갈비뼈가 부러졌다. 조카를 돌보러 언니 집에 머물고 계신 엄마가 난데없이 병원에 계신다는 카톡에 깜짝 놀랐다. 무슨 일이냐고 여쭤보았더니 침대에 부딪히셨다고 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수차례 통화 버튼을 눌렀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진료를 마친 엄마와 겨우 통화 연결이 되어 엄마의 몸 상태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갈비뼈 하나가 골절되었고, 수술할 필요는 없으며 약을 먹으며 쉬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전화를 끊고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별안간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다녔다.
‘응? 언니 집에는 침대가 없는데?’
지난 주말은 내 아기가 아팠다. 콧물도 나지 않고 기침도 나지 않는데 39도를 넘는 고열이 계속 찾아왔다. 날마다 병원을 들락거리며 진찰을 받았지만, 목이 부은 것 외에 다른 증상이 없으니 일단 해열제와 소염제를 먹으며 기다려보기로 했다. 열에 들뜬 아기는 밤잠을 쉬이 이루지 못하고 날카롭게 울어댔다. 마침 우리 집에서 손주를 돌봐주시던 친정엄마 역시 잠도 제대로 주무시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셨다. 날이 밝자마자 아기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고, 진료를 받은 뒤 약국에 들렀다. 약국에 들어서서 엄마에게 혹시 필요한 게 있냐고 여쭈었더니, 파스를 하나 사야겠다고 하셨다. 아기의 약과 더불어 엄마가 쓰실 파스를 함께 계산했다. 난 그때 자세히 묻지 않았다. 엄마에게 왜 파스가 필요했는지, 언제부터 그곳이 욱신거렸는지. 그저 허리가 조금 아프다는 엄마의 말에 대수롭지 않게 파스를 집어 약국 문을 나섰다.
엄마는 우리 집에서 갈비뼈를 다쳤다. 내가 내 아기를 돌보느라 여념이 없는 사이, 엄마는 침대에 부딪혀 아파하셨다. 그것도 몰랐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렸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새 옷을 사달라고 조르면서 엄마의 속옷에 난 구멍은 미처 보지 못했다. 내 욕심에 비싼 인터넷 강의를 끊어달라고 하면서 우리 집에 날아오는 대출금 상환 독촉장은 모른척했다. 대학교 때 과외를 해서 벌어들인 용돈으로 내 치장을 하기 바빴다. 아기를 낳고 나서도 내 아기가 먹을 비타민과 유산균은 꼬박꼬박 챙기면서도 부모님께 제대로 된 영양제 한 번 사다 드린 적이 없었다. 주마등처럼 흘러가는 내 욕심과 이기심의 나날들이 부끄러웠다.
엄마는 말씀하셨다. 원래 다 그런 거라고. 부모가 자식을 먼저 챙기고 그 자식도 자기 자식을 챙기는 게 내리사랑이라고. 각자 온 힘을 다해 자기 새끼를 예뻐하면 되는 거라고. 그런데 왜 이렇게 그 말에 죄책감이 들고 눈물이 나는지. 나보다도 작은 체구를 가진 조그마한 우리 엄마의 마음속에는 어떻게 저런 깊고 넓은 바다가 존재하는지. 나는 그동안 요트를 타고 그 바다를 유유히 떠다니는 존재에 불과했다. 거친 풍랑과 파도는 엄마에게 맡겨둔 채 바다의 넘실거림을 즐기기만 하던 아이였다.
이제 내가 엄마를 보살필 시간이다. 엄마의 좋지 않은 관절을 항상 체크하고, 간에 좋은 영양제를 사다 드리고, 몇 해 전 수술하신 눈의 건강을 살펴야 한다. 아빠가 일터로 가시고 나면 홀로 낮에 집에 계실 엄마에게 자주 영상통화를 하고, 주말에는 직접 찾아가 손주를 안겨드려야겠다. 이렇게 해도 내가 받은 만큼 다 돌려드릴 수는 없겠지만 내가 나를 돌보는 시간, 내 아기를 돌보는 시간의 일부분만이라도 엄마에게 쓴다면 엄마의 갈비뼈가 부러진 것도 모르고 지나가는 아둔함과 무심함을 조금이라도 날려버릴 수 있지 않을까. 사랑하는 나의 엄마, 엄마의 갈비뼈를 붙게 하는 건 주사와 약, 그리고 나의 정성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