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 인연, 운명
자본주의 역사적 형태가 도시이고, 그 본질은 상품교환 관계입니다.
얼굴 없는 생산과, 얼굴 없는 소비가 상품교환이라는 형식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관계 입니다. 얼굴 없는 인간관계……. 즉, 만남으로 이뤄 어진 관계가 아니기에 진정성이 없으며 수많은 만남을 같는다. 한들 외롭기 짝이 없습니다.
삶에는 순서도 없고, 질서도 없습니다. 도시에서의 수많은 만남을 '점(우연)'이 될 것이고, 한 발 더 나아간다면 '선(인연)'으로 연대가 맺어지고, 나중에는 '면(운명)'으로 확장 되야 합니다.
하지만 도시에서의 만남은 대부분 일로써의 만남입니다. 즉, 자본주의에 살고 있는 우리로써는 현재를 살아가기 위한 만남이기에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 놓기가 쉽지 않을게 현실입니다.
얼마 전 읽었던 책 내용 중에 주역64괘를 읽고 해석하는 방법을 '독법'이라고 하고 그 독법이 관계론을 취하고 있다는 내용의 글을 읽었습니다.
위位, 비比, 응應, 중中 이 네 가지 독법입니다.
위(位)는 자리를 나타냅니다. 가령 제가 한 가정의 가장이라면 가장으로서의 자리와 회사 내에서의 내 자리를 나타냅니다. 위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내 자리를 잘 찾아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득위'라고 합니다. 만약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닐진데 억지로 있다면 '실위'할 수도 있겠죠.
비(比)는 관계를 나타냅니다. 부모형제, 친구, 이웃관계등을 말합니다. 공간적으로는 어제와 내일 이런 것들입니다.
응(應)또한 관계를 나타내고 있으나, 비에 대해 그 관계성의 폭이 더 넓다 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청년시절과 중년시절의 관계를 본다든지, 친구나 가족과의 관계를 본다든지...관계의 범위가 시공간적으로 더 확장됩니다.
그렇기에 응을 말하기를 '덕을 쌓는다', '인심을 얻는다'라고 합니다.
여기서 개인적으로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핵심은 위, 응 둘 중 어느것이 더 중요한가 입니다.
보시는 관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위가 중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사회적위치를 애기할 수 있으니까요...그런데 저는 응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왜냐면? 내가 다니던 회사를 관두더라도 인간관계를 진심으로 두텁게 만들어 갔다면 자신의 자리를 실위 했다 해도 삶을 살아가는 것에 큰 지장이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첫 서두에 말씀드렸듯이, 도시에서의 만남의 깊이가 참으로 깊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루하루 내 자리를 잃을까바... 걱정하는게 아닐까 합니다.
맹자의 구절 중에 이양 역지(以羊易之) 말이 있습니다.
즉, 본것과 보지 않은 것에 대한 차이입니다. 본 것은 만남이고 서로아는 "관계"를 애기합니다. 관계가 있는 것과 관계가 없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진정성 있는, 마음이 편한 '관계 맺기'를 가지시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