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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떼파파 Dec 26. 2020

빗속에서 춤을

'벼린다는 것', 인생 훈수의 최고 정공법


"회사에서 만약 희망퇴직을 시행하면, 자기는 어떻게 생각해?"

"(......) 회사에서 나가라면 어쩔 도리는 없겠지만, 그전에 미리 알아보고 나가던가 해야지..."

"당연히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 하지만 지금 나이도 그렇고,  딱히 전문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경력과 경험을 내세울 처지도 아니고..."

"지금 코로나 때문에 난리인데... 회사에서 나가라고 하지 않는 이상 끝까지 버텨야지... 율이 이제 5살이야."

"그야 뭐... 끝까지 버텨야지... 그런데 만약에 말이야."



코로나로 인해 급격하게 경영상태가 불안해진 회사 상황에 빚대 슬쩍 아내에게 꺼내본 말이지만, '핀잔'만 한 사발 쭉 들이킨 기분이었다. 확실한 방편도 없이 스스로 나오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것. 물론 나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던졌지만, 마주하는 현실의 혹독함과 냉혹함을 짐작하는 만큼 재빨리 말을 거둬들였다. 예전 ‘희망퇴직’이란 그럴싸한 미명 하에 강제로 축출당했던 선배들의 면면을 보면, '희망퇴직'을 쉽게 툭 내뱉을 말은 아님은 알고 있었다. 아니꼽고 더러워서 그만둔 선배들 대부분은 늦은 나이에 회사를 나왔던 터라 여전히 자리를 잡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간간이 전해오는 그들의 충고는 '끝까지 버텨라'는 것. 정년까지 15년 넘게 남았는데 사실 회사만 버텨준다면 '땡큐'지만, 그게 뜻대로 될지는 희망사항에 가깝다.   


만약 회사가 잘못돼 풍찬노숙의 신세로 전락할 지경이라면, 당장 내가 가진 능력, 지식, 경험을 최대치로 뽑아내 먹고사는 것을 해결할 수 있을까. 요즘 문득문득 드는 생각이다. 사오정(45세 정년)이란 말처럼 회사에서 언제 쫓겨날 줄 모르는 불안함이 시시각각 옥죄어 온다. 때문에 은근 내 나이쯤 되면 아무래도 플랜 B를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지금처럼 안온한 일상의 뒷배가 되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현실은 이상과 몽상으로 그치기 마련이다. 원초적이지만 먹고사니즘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하고 싶은 일도 말짱 도루묵이 될 수밖에 없는 처연한 현실을 숱하게 목도한다. 만용으로 회사를 관뒀다가 후회로 점철된 경우를 많이 본 것도 '덕업일치'가 일부의 전유물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언제 어떻게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르기에 늘 플랜 B, 플랜 C를 가슴에 지니고 다닌다. 구직사이트를 검색하기도 하고, 창업 아이템이 뭘지 고민해본다. 그러다가 귀농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몸으로 부딪치는 일을 가늠해보기도 한다.  




나는 성장과 성찰의 욕구가 강한 편이다. 숱한 겹핍에서 비롯된 당연한 귀결인 셈인데, 읽고, 쓰면서 현실의 허들을 넘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다만 그 욕구가 재능과는 거리가 있고, 또한 이런 노력이 사회적 수요의 기준에는 한참 미흡하지만, ‘졸꾸 정신’으로 이어지다 보면 언젠가 ‘햇뜰 날’이 오지 않을까 살짝 기대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의 이면에는 '벼리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국어사전에 '벼리다'는 무디어진 연장의 날을 불에 달구어 두드려서 날카롭게 만드는 것. 즉 마음이나 의지를 가다듬고 단련하여 강하게 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지금까지 내가 가진 연장이 무엇인지 꺼내본다. 죄다 녹슬고 볼품없으며, 시장에서 거들떠보지도 않는 먼지 낀 골동품이 아닌지 푸념한다.(너무 폄훼하는 걸까...)


사실 요즘 세상에 벼리지 않고는 과거와 현재에 머무를 수밖에 없고, 머무른다는 것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대에 '도태'라는 말로 치환될 수밖에 없다. 아내의 말처럼 회사에서 버티는 것이 우선순위겠지만, 코로나처럼 인생에 어떤 리스크가 급작스럽게 닥칠지 모른다. 그런 경우를 대비해, 낭중지추가 아닌 이상 벼리는 데 시간과 돈과 열정을 투자해야 한다.


'벼린다는 것'은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배우는 점도 있지만, 기존의 낡은 것을 갈고닦아 내가 가진 역량을 시장이 원하는 기준까지 끌어올린다는 뜻이다. 그것은 이직 시장을 통한 인생 이모작의 터닝포인트일 수도 있고, 사이드 잡으로서의 블루오션일 수도 있으며, 덕업일치의 꿈을 이루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맹목적으로 급류에 휩쓸리듯 현실의 불안함에 쫄보처럼 바짝 얼어붙기보다, 냉철하게 나의 역량을 진단해 그것을 벼리는 행위와 접목할 때 이는 나와 내 가족의 흔들림 없는 일상을 보장하는 든든한 보험이 되지 않을까. 물론 낡은 연장을 다시 풀무질하고 담금질하면서 예리하고 뾰족한 무기를 만드는 지난한 행위부터 시작해야겠지만 말이다. 폭풍우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기보다 빗속에서 춤추는 용기가 필요하다. 


"Life isn't about waiting for the storm to pass. It's about learning to dance to in the rain."
- Vivian Gree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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