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떼파파 Dec 19. 2020

졸렬하지 않게 사는 법

자투리를 함부로 대하지 마라

# 존재감 뿜뿜에 그저 고마울 뿐


요즘처럼 '습관'을 입에 올리는 경우도 드물었던 것 같다. 제법 윤기 나는 습관들이 내게 들어왔다. 난데없이 튀어나갈까 봐 노심초사하지만, 아직은 든든하게 존재감을 뿜뿜하신다.


나열하자면, 새벽 운동(러닝 40분)-명상(10분 명상 앱)-감사일기-영어공부(EBS 파워 잉글리시)-시 필사로 하루를 연다. 보통 새벽 4시에 시작된 이 습관들이 출근 전까지 바짝 달라붙어 동행을 기꺼이 자처한다. 뭐 날씨가 짓궂으면 핑계 삼아 새벽 운동을 스킵할 때도 있지만, 대신 근력운동(스쾃, 푸시업)은 변함없이 묵언수행 중이다.  


누구나 좋은 습관을 장착하고 싶다. 시중에 나온 베스트셀러만 하더라도 대개 '습관 시리즈'는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나 역시 무수한 실패와 후회와 번민 속에 시행착오를 거쳐 드디어 ‘습관 패키지’로 장착하는 데 성공(?)했다. 덤으로 하루가 아주 풍성해졌다. 사실 얼마 전 건강 적신호로 인한 태도 변화가 이런 습관 덩어리 정착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전화위복을 제대로 실감했다.



# 습관이 단편소설이면, 리추얼은 시리즈!


문득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습관이 단편소설이라면, 덩어리로 이뤄진 리추얼은 시리즈 장편소설이란 사실이다. 습관은 단편소설이 주는 짜릿함은 있지만 헛헛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대신 리추얼은 장고의 호흡을 요하는 만큼, 꽉 차는 충만함을 느낀다. 예컨대, 하나의 사이클로 이뤄지는 아침의 리추얼이 개개의 습관만으로 작동한다면 효율성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촘촘한 얼개로 이뤄진 일정한 패턴 속에, 익숙함이 더해지면 농밀함이 발그레한 표정으로 나를 향해 미소 짓는다.


또한 습관의 단절은 포기를 낳기 쉽지만, 리추얼은 습관 하나쯤 루틴의 궤도를 이탈하더라도 전체 사이클은 굳건히 버텨낸다. 대신 빠져나간 습관 자리에 더 좋은 놈이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다. 이미 알박기 식으로 터줏대감 노릇하는 이들이야 건드려봤자 백해무익이니, 어떻게 하면 더 뾰족하게 만들지 고심하면 된다. 예컨대, 영어공부 습관이 어려워, 대신 매일 글쓰기로 대체했을 때, 기존과 다른 성격의 리추얼이 완성되기도 한다. 아울러 시 필사가 시 쓰기로 확장될 수 있고, 중급의 영어가 고급 단계로 진일보하는 성장을 맛볼 수도 있다.


리추얼이 부실한 인생을 견인하는 고마운 존재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단순한 개별 습관이 어느 정도 내 삶의 위용을 발휘할 수 있지만, 그릿과 맞물린 꾸준함 면에서는 체력에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결국 리추얼이 내 인생의 일부가 된다면 적어도 부끄럽거나 졸렬하게 살지 않았다는 표식쯤은 남기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한다.     



# 촘촘한 시간이 인생 멱살 끌고 간다!


리추얼의 확장판은 결국 얼마나 시간을 촘촘하게 쓰느냐에 달렸다. 시간에 쫓기며 사는 것이 현대인의 숙명이지만, 이런 촘촘한 시간 셈법과 그 활용 여부에 따라 효율성은 배가되기도 하고, 반감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자투리 시간. 메인보다 사이드에서 찾는 시간이야말로 그 활용법을 찾았을 때 짜릿한 묘미가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자투리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마치 횟집에서 메인 요리인 회보다, 사이드디시인 각종 해산물이 더 맛있듯이 말이다. 분 단위, 초 단위의 긴장감 속에 늘 데드라인과 마주하다 보면 왠지 열심히 혹은 억척스럽게 사는 것 같은 착각을 선물(?)한다. 젊을 때는 시간이 무한정 넘치는 줄 알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은 기하급수적으로 가속도의 피치를 올린다. 때문에 요즘 시간만큼은 적어도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급행에서 완행으로 갈아타고픈 욕망이 꿈틀댄다.


그 하나가 바로 자투리의 묘미에 있다. 예컨대 아침 출근 시간에 지하주차장까지 가는 데, 구독 뉴스(어피티)를 일독한다. 업무 시간 중에는 중간중간 쉬는 틈을 활용해 원서(전자책)를 읽는다. 퇴근 시간엔 유튜브를 통해 노동법 강의를 듣는다. 보기에 따라 꼭 저렇게까지 살아야하는지 측은한(?) 눈길을 줄 수 있지만, 결론은 그렇게 사는 것이 맞다. 이 모든 것이 성장과 성찰과 연계돼 있다 보니, 한시도 게을리할 수 없다. 추구하는 인생의 태도와도 밀접하기에 더더욱 그렇다.


하루 24시간을 통과하는 물리적 양은 동일하지만, 이런 자투리가 내게 시간을 확장하고 삶을 확장하는 지렛대 역할을 한다. 물론 일취월장과는 거리가 있지만, 우공이산의 마음으로 산을 옮기다 보면 언젠가는 태산까지 공간 이동하는 신공을 갖출지 누가 알겠는가. 일신우일신하자는 내 인생 모토와도 맞으니 일석이조가 아닌가.   


리추얼과 자투리가 인생 멱살 제대로 끌고 가는 셈이다.

작가의 이전글 (3) 추가 조직검사라고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