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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떼파파 Dec 17. 2020

(3) 추가 조직검사라고요?

반전과 반전사이

드디어 용종을 떼어냈다. 간호사는 나와 동생을 불러, 생각보다 큰 사이즈와 추가 용종이 발견됐다고 전했다. 수면 내시경의 약기운이 여전해 비몽사몽 어지러웠다. 수납까지 마친 후,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꼬박 만 하루를 굶어서 그런지 장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네 번의 끼니를 거르다 보니, 허기진 배를 채우라는 신호가 빗발쳤다. 하얀 죽을 욱여넣기 시작했다. 다음날에야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간호사의 엄명(?)에 아쉬움을 삼키며 힐끗힐끗 옆만 바라봤다. 부모님과 동생 그리고 와이프는 연신 소고기를 구우며, 주린 배를 채우고 있었다.




"소화기내과 조직검사 추가되어 41,200원 수납 안내드립니다. 다음 진료 시 과에 확인하신 후 수납창구 방문하시어 입금 부탁드립니다.”


느긋하게(?)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던 내게, '청천벽력'같은 문자가 날아왔다. 23일 결과인데, 정확히 일주일 전 '추가 조직검사' 문자가 날아온 것이었다. 또다시 악몽이 시작됐다. 인터넷도 '추가 조직검사'에 관한 정보는 빈약했다. 애매모호한 말들로, 마음만 불편했다. '다시는 인터넷을 하나 봐라...'


잠자리에 들어도 정신만 말똥말똥했다.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추가로 조직검사를 한다는 건, 뭔가 좋지 않다는 건데... 아... 이건 뭐지 또.' '의사 선생님이 괜찮다고 했잖아. 문제없을 거야.' 양단의 마음이 갈피를 못 잡고 오락가락했다. 괴롭고 심란한 시간이 다시 태동하기 시작했다.


결과 전까지 일주일이란 시간. 그렇게 더디게 흐를 줄은 몰랐다. 아내에게 이 사실을 말하자, 아직 결과도 모르는 데 앞서 생각하지 말라고. 만약 안 좋으면 고치면 그만이라며 타박을 놓는다. 묘하게 흔들리는 눈빛을 포착한 나는, 아내 역시 무척 힘들겠다는 생각에 가슴 아팠다.


예전 개그맨 유상무가 TV에 출연해, 가장 힘든 시간이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순간이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이 제대로 실감 날 줄이야...


부모님께는 함구한 채, 제발 시간이 후딱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어떤 결과든지 받아들일(?) 각오를 다지면서, 나름 플랜 A, 플랜 B, 플랜 C까지 계획했다. 신을 믿지 않지만, 그 순간만은 영성에 마음을 기댔다. 참 얄궂다. 이런 시련이 내게 찾아올 줄이야.




드디어 23일 결과일. 오후 2시 진료 약속이라 느릿느릿 움직였다. 마음은 초침까지 세어가며 시간을 재촉했지만, 일각이 여삼추여서 더디고 굼뜨기만 했다. 혼자 다녀오려고 했더니, 와이프와 아들은 벌써 외출 차림을 마쳤다.


"같이 가자. 가족 아이가. 함께해야지."

"뭐할라고. 혼자 가도 된다."


'함께'라는 와이프 말에 순간 울컥했다. 아들은 영문도 모른 채 그냥 서울로 나들이 가는 줄 안다. 오랜만의 외출이라 신이 났다.


약 1시간 30분에 걸친 오랜 운전 후, 고속버스 터미널 맞은편에 위치한 성모병원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코로나도 있으니,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어. 결과 듣고 바로 전화할게."

"알았어. 잘하고 와. 율아, 아빠한테 '화이팅'이라고 해"

"아빠~ 화이팅"


배시시 웃는 아들을 뒤로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소화기 내과 3층에 다다랐다. 창문 밖으로 남산타워가 보였고, 길거리에 오가는 사람들은 분주히 제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청명했다.


드디어, 모니터에 이름 석 자가 떴다. 예상보다 10여 분 정도 길어진 탓에, 숨을 여러 번 고르고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갔다.




"용종은 잘 떼어냈어요. 고이형성 톱니 모양인데, 2.2cm 정도 됐어요. 암 전 단계의 선종입니다. 1년 후 대장내시경 검사 다시 받으시면 됩니다."

"휴... 선생님 감사합니다. 추가 조직검사 문자에 어찌나 걱정이 되던지요."

"아, 그건... 통상적으로 검사를 진행하기도 합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만약 문제가 있었다면 시술 당일 말씀드렸을 겁니다."

"아... 그런가요? 저 사실 피 말리는 시간을 보냈거든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8월 건강검진, 9월 아산병원 첫 진료 그리고 11월 성모병원 용종절제술에 이어 조직검사 결과까지. 지난 4개월간 지난한 여정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살면서 이 짧은 시간에 그토록 많은 근심과 불안이 내 인생의 서사를 훑고 지나갔을 줄이야. 10년 전 아버지 위암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진료일을 잡고 수술했던 그 시기를 빼고는 없었던 것 같다.


"자기야, 괜찮단다. 1년 후 검사하자네."

"휴, 다행이네. 율이가 아빠 찾고 난리다. 먼저 아버님 어머님께 전화해라. 많이 기다릴 텐데"


전화를 끊고 곧장 아버지에게 연락했다.


"아버지, 괜찮다네요."

"아이고 다행이네. 연락이 없어 걱정했다 아이가. 괜히 니 엄마한테 속앓이 했지 뭐냐. 알았다. 고생했다."

"네... 또 연락할게요."


내년에 받을 내시경 검사 수속과 수납을 마치고 서둘러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이번 일을 겪고, 결과는 해프닝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과정만큼은 말로는 다 못할 깨달음을 느꼈다.

 



스스로를 객관화해서 인식하는 '메타인지'를 키우며, 나름 강한 자아를 지향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올시다'였다. 여러 블로그 포스팅을 통해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를 적잖게 끄적였지만, 실체는 완전히 달랐다. 공포와 불안으로 점철된 시간은, 여전히 연약하고 힘겨워하는 나 자신만을 기억할 뿐이었다.


이번 일을 겪으며 '설마' '혹시''행여'라는 가정이 머리와 심장에 꽂힐 때마다, 그런 불안은 스노우볼이 되어 일상을 흔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런 기류에 휩싸여 일상이 파괴되도록 내버려 뒀을 텐데, 이번엔 평소와 다름없이 루틴을 소화하며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회피하지 않았다. 수많은 책과 명사들이 부정적인 감정조차 삶의 소중한 일부라는 가르침을 토대로, 정면으로 마주하며 쓰다듬고 감싸 안았다. 대신 불안하고 울적한 마음을 달래고자 운동과 명상에 더욱 몰입했다. 힘든 시간을 통과하는 데는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또한 평소라면 흘려들었을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며, 이 세상은 절대 혼자 사는 법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내 주위에는 따뜻하고 힘이 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고, 이번 일을 계기로 그들의 응원 속에 팽팽한 긴장의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특히 가족의 믿음과 사랑은 내가 훗날 어떤 일을 겪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존재(Being)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으며, 감사의 마음을 가슴속에 박제했다. 그리고 8kg 가까이 줄어든 몸무게는 덤으로 얻은 수확 중의 하나였다.


이런 일이 언제라도 닥칠 수 있다는 생각에 아찔하면서도 모든 것에 감사하고 겸손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발견하기 힘든 위치에 용케 용종을 찾은 검진센터 선생님, 친절한 미소로 깔끔하게 용종을 제거해 주신 성모병원 선생님, 보다 나은 대안을 가르쳐준 대학 동창 J, 그리고 언제나 나를 지지하고 함께해주는 가족까지, 어쩌면 내게 새로운 인생의 기회와 행운을 가져다준 고마운 사람들이다.


3회로 나눠 스토리를 엮은 것은 그 순간의 떨림과 울림을 세세하게 기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휘발되는 사건이기보다, 언제라도 들춰볼 수 있는 나의 역사기 때문이다. 기록은 기억을 언제나 지배하는 법이고, 이러한 기록은 조금은 더 나은 내 삶을 응원하리라 믿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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