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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떼파파 Dec 17. 2020

(2) 두 달 사이 8kg이나 빠지다니...

전화위복의 시작

‘개복수술’이란 말을 듣고 심란함이 가시질 않았다. 44년 동안 수술 한 번 받아본 적 없는데, ‘개복’이라니... 그것도 국내 최고 병원의 전문의가 한 진단이라, 우울감이 급속도로 밀려왔다.


“아니, 그럴 가능성도 있다는 거지, 꼭 그렇다고 한 건 아니잖아. 만약 그렇다고 하면 고치면 되지. 뭐가 걱정이고.”

“아니... 자기 말이 맞긴 한데, 솔직히 ‘개복’이란 말을 들으니 겁나는 걸 어떡하냐?”


아내는 대수롭지 않은 듯, 확실한 것도 아닌데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고, 설사 안 좋으면 수술하면 된다며 조곤조곤 타일렀다. 순한 양이 된 나는 반박할 ‘꺼리’를 찾지 못한 채, 고개를 주억거리면서도 내심 불안함은 가시질 않았다.


일간지 의료 섹션을 담당했던 대학 동창 J가 떠올라 고민 상담차 전화를 걸었다. 그는 대충 자초지종을 듣더니, 답답하고 어이없다는 듯 저렴한 말들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아이고 답답한 놈아. 내년 1월까지 어떻게 기다려? 대장 용종 떼는 게 뭔 대수라고, 그때까지 기다리노. 다른 병원 빨리 알아보고 시술받아라. 기다리는 시간이 더 힘들겠다.”

"그래? 다른 병원도 상황은 비슷하지 않을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다른 데 알아보는 게 나을까? 아산병원이 그래도 큰 편인데...”

"이놈아, 용종 떼는 건 다른 곳도 잘한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다가 병나겠다."




나는 '아차' 싶은 생각에, 서둘러 다른 병원을 알아봤다. 내시경을 받았던 검진센터에 연락해, 협약 관계를 맺고 있는 서울 성모병원과 연락이 닿았다. 다행히 2주 뒤 진료 일정이 잡혔다.


머릿속은 '개복'이란 두 글자가 붕붕 떠다녔다. 잊을만하면, 아산병원에서 진료했던 의사가 나타나 '개복'이란 말을 귓가에 속삭이는 것 같았다. 최악의 경우를 감안하더라도 왜 그런 말을 꺼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세히나 물어볼걸...'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근심은 끝 간 데 없이 커졌다. 회사에서도 온통 ‘대장’ 생각에 사로잡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용종’이란 말만 들어도 신경이 곤두서며 일순간 긴장 모드로 돌변했다.


한 번은 개그맨 유상무가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그의 투병기를 담담하게 들려줬다. 대장암 3기였지만, 아내의 헌신적인 내조 덕에 지금은 거의 완치에 이르렀다고 했다. 시종일관 웃음을 보이는 그의 여유가 부러웠다. 또 얼마 전 영화 블랙팬서의 주인공 채드윅 보스만이 대장암으로 사망했다는 기사를 출근길 라디오에서 들었다.


시쳇말로 책을 읽어도, TV를 봐도, 그리고 인터넷을 해도, 온통 '대장' 이야기만 쏟아지는 것 같았다. 평소라면 무심코 흘렸을 말과 글이 뇌리에 각인된다는 것, 신경이 온통 그쪽에 쏠릴 수밖에 없어 당연한 감정이라 여기면서도, 억지로라도 밀어낼 수 없는 답답함에 심신은 지쳐만 갔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5살 아들을 볼 때였다. 복잡한 감정에 얽매여 마음이 심하게 요동쳤다. 횡격막을 오르내리는 들숨과 날숨이 거칠고 둔탁했다. 해맑게 웃는 아이의 미소를 볼 때마다 정도는 더 심했다. 아빠로서 마음을 다잡다가도, 이내 혼란스러운 감정이 마음속 가득 차올랐다.




그리고 강남 성모병원에 첫 진료를 받으러 가는 날. 그 사이 의료 파업은 끝이 났고, 코로나 19에 따른 출입절차는 한층 깐깐해졌다. 소화기센터는 3층에 있었다. 이름 불리기 전까지 또 얼마나 긴장되던지, 쿵쾅거리는 심장과 함께 손은 이미 땀이 차기 시작했다.


"영상을 보니..."


50대 초중반쯤으로 보이는 의사 선생님. 인상은 다정해 보였다. 목소리 톤도 중후하고 따뜻했다. 하지만 약간 뜸을 들이는 모양새에 또다시 심장이 철렁 내려앉기 시작했다.


"용종이 제법 크긴 한데 시술하면 될 것 같아요. 크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걱정 안 해도 되나요? 정말요? 혹시 안 좋은 쪽은 아닌가요?"

"그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대기 환자 때문에 시술은 좀 밀릴 수 있어요."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씨... 마음고생한 걸 생각하면...' 후련했고 통쾌했으며, 시원했다. 입원할 필요도 없다며, 당일 대장 내시경으로 시술하면 된다고 했다. 날짜도 11월 12일로 아산병원에 비해 두 달 가까이 당겨졌다. 비교하긴 그렇지만, 아산병원에서 느꼈던 찝찝했던 마음이 사라졌다. 불안이란 안개가 확 걷혔다. 세상이 달라 보였고,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솟구쳤다.




이제 시술까지 약 2개월간의 시간. 그동안 몸을 함부로(?) 굴린 데 대한 반성 차원에서, 밀가루부터 끊었다. 가끔 밤에 자작을 즐겼던 맥주도 포기했다. 들쭉날쭉하던 새벽 운동을 거의 매일 소화했다. 시술 전까지 2개월 동안 8KG이 빠졌다. 운동보다 식습관 변화와 단주 효과가 컸던 것 같다. 허리 사이즈가 확연히 줄다 보니 옷 입기가 한결 편해졌다. 오래 만에 만난 지인은 살이 제법 빠졌다며 전보다 보기 좋다며 덕담을 건넸다.


몸은 신기했다. 절대 뺄 수 없다고 여겼던 몸무게가 하루가 다르게 저울 위 숫자가 바뀌는 것을 보고, 자신감을 얻었다.


“자기, 결혼하고 나서 가장 적게 나가는 몸무게인 것 같은데?”

“그런가? 하하하. 나도 그렇게 생각해. 빵과 라면과 맥주만 안 먹어도 이렇게 빠지는구나.”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고, 드디어 11월 12일 용종 절제 시술일이 다가왔다. 전날 부산에서 부모님까지 올라오셨다. 코로나로 인해 추석 때 찾아뵙지 못했는데, 부모님도 큰 아들 시술이 궁금하고, 오랜만에 손자 보고 싶은 마음에 겸사겸사해서 먼 길을 자처하고 온 것이었다.


"니 엄마 놔두고, 나도 갈랬더니... 가족 동반이 한 명밖에 안된대?"

"코로나 때문에 보호자 한 명으로 제한했더라고요. 동생이 같이 가니깐, 집에 계세요."

"... 알았다."


아버지께서 동행하자고 할 줄은 몰랐다. 그날 대장 내시경을 위해 장 청결제를 복용한 나는 열 번 넘게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했다. 사실 내시경보다 장을 비우는 것이 더 고역이었다. 시술 시간보다 넉넉하게 도착하기 위해 동생과 함께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3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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