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앓이의 시작
‘땅땅땅!’ 귓전을 때리는 의사의 ‘선고’에 순간 멍했다. 평소 원활하게 작동하던 뇌 회로는 렉이 걸린 것처럼 버벅대기 시작했다. 심호흡 후, 말을 뗐다.
“선생님, 큰 병원이면... 대학병원을 말하는 건가요?”
“네, 용종 크기가 1cm가 넘어가면 여기서 떼긴 힘듭니다.”
지난 8월 중순 건강검진센터에서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은 이후, 의사 선생님이 따로 불러 세웠다. 맹장 근처에 용종 사이즈가 커서 큰 병원에서 절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7년 전 받았을 때만 해도 아무 이상이 없었고, 국가에서 대장내시경을 권고하는 50세 기준에도 한참 미달(?)했기에 왠지 억울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러면서 ‘용종쯤이야 흔히 발견되니까...’라며 스스로를 타일렀다.
그때부터 ‘대장 용종’에 관해 검색에 들어갔다. 인터넷에는 별의별 이야기가 넘쳐흘렀다. ‘인터넷은 그래서 되도록 피하라고 한 것인가!’ 그래도 ‘용종’은 주위에서 흔히 듣는 편이니, 큰 걱정은 되지 않았다. 다만 ‘만약’이란 가정이 머릿속에서 맴돌다 보니,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일단 병원 예약부터 시작했다. 서울 아산병원의 소화기내과 진료가 2주 만에 잡혔다. 진료 당일, 연차를 내고 병원으로 향했다. 입구에는 '의료파업'을 지지해달라는 피켓시위가 한창이었다. 인턴으로 보이는 두 명의 젊은 의사들은 동관 입구에서 유인물을 돌리며 파업의 당위성을 호소했다. 잠시 시선을 멈췄을 뿐, 의료파업에 그리 웅숭깊은 데가 없었다. 곧장 1층 접수창구에 내시경 CD를 등록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진료실 앞에 섰다. 이름이 불리고, 긴장된 마음으로 병원 문을 열었다.
흰머리가 소담하게 내려앉은 50대 의사 선생님이 CD에 담긴 영상을 이리저리 보더니 말을 던졌다.
“네? 용종 떼는 데 개복을 한다고요?”
“아니 뭐,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요. (음... 음...) 위치와 크기를 볼 때 그럴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시무룩) 네...”
“그런데, 시술이 많이 밀렸어요. 괜찮으시겠어요?”
“그럼, 그때까지 용종이 더 커지면 어쩌죠?”
“뭐, 몇 개월 뒤라고 용종이 그리 자라지는 않으니, 그 점은 걱정하지 안 하셔도 돼요.”
“네. 선생님.”
약 5분의 짧은 진료시간. 탄식과 한숨이 쏟아졌다. ‘괜찮으니, 걱정 말아요.’라는 의사의 검증된 확신을 기대했는데, 오히려 ‘개복’이란 말까지 듣고 나니 바람 빠진 풍선처럼 되려 힘만 빠졌다. 아산병원은 대장용종 절제술을 전문으로 하는 담당 간호사가 상시 대기하고 있었다. 하릴없이 시술 일정을 잡아야 했다.
“아시다시피 의료파업과 코로나 때문에 많이 밀렸어요. 제일 빠른 날짜가 내년 1월 20일입니다. 그리고 2박 3일간 입원하셔야 돼요.”
“지금 9월인데, 그럼 5달 가까이 기다려야 하나요? 그리고 입원까지요?”
“하필 지금 파업과 코로나가 한꺼번에 겹쳐서 그래요.”
“그런가요? (침묵)...... 어쩔 수 없죠. 그럼 그렇게 해주세요.”
“어떤 선생님이 검사했는지 모르지만, 무척 꼼꼼하신 분인 것 같아요. 맹장 입구 쪽이라 발견하기 힘든 곳이었는데... 그래도 발견하게 돼서 럭키에요 럭키.”
“그럼 악성은 아니라는 말인가요? 그것만 아니면 되는데...”
“그건 모르죠. 반반이에요. 조직 검사를 해봐야 아니깐요.”
“......”
10년 전 아버지 위암 수술로 해마다 들락거렸던 아산병원. 내가 진료 카드를 만들어 아산병원 문턱을 오를 내릴지는 몰랐다. 힘없이 발길을 돌려 병원 주차장으로 가던 길에 간호사가 던진 마지막 말이 맴돌았다.
“지금껏 여기 오신 환자 분들을 보면, 평소 자기 몸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확실히' 알겠더라고요.”
주차장에서 핸들을 잡기 전, 한숨이 새어 나왔다. 5개월 동안 마음앓이할 생각을 하니 막막했다. 서글픔마저 밀려왔다.
<2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