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투는 때론 아버지를 춤추게 한다
“뭐, 주위에서 추대한다면, 한 번 더 할 마음은 있다”
수화기 너머로 건너오는 아버지의 담담하고 건조한 목소리. 마을 이장의 연임을 확신하는 목소리였다. 그렇게 2025년 마을 정기총회에서 다시 한번 이장 연임을 확정했다. 경쟁자가 없어 다소 싱겁기도 했지만, 지난 2년 동안 무탈하게 소임을 해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면장은 연임 축하를 위해 한걸음에 달려왔고, 군수는 축하의 말을 건네며 과거의 인연을 꺼냈다. 여러 이장 중 두 번째로 고령에 드는 아버지의 입김을 내심 그들은 신경 쓰기 때문일까. 그러면서도 문득, ‘마을 이장의 힘이… 이런 건가!’ 싶기도 했다.
70대 중반을 향하는 아버지의 노익장은 연륜에 더해 마을의 대소사를 무리 없이 해냈다. 그러다 보니 마을 주민들로부터 적잖은 신임을 얻었고, 새로운 2년의 임기를 시작하게 됐다.
가끔씩 자비를 더해 여행을 겸한 국내외 연수를 다녀오기도 하고, 국책사업과 연계해 마을의 크고 작은 공사를 따내기도 한다. 공사건수와 예산액에 따라 마을마다 희비가 엇갈리고, 이에 개개인의 이장 능력이 판가름 난다. 아버지는 지난 2년 동안 마을 공동 주차장과 공동 작업 하역장 등 굵직한 사업을 추진했고 착공까지 완료했다. 아버지에게 종종 불만인 엄마도 이 일만큼은 에둘러 남편의 능력을 인정했다.
“그래도 너희 아버지, 제법 일도 잘해서 사람들한테 신임은 있어”
이번 설날에 고향을 찾은 나는 아버지의 새로운 임기를 축하했다. 아버지는 옆집 동네의 전 이장은 이번에 10표 차로 재선에서 낙마했다며, 그 동네는 여론이 반반으로 나뉘어 앞으로 갈등과 분란이 적지 않을 것 같다며 걱정했다.
아버지의 마을 이장 연임은 당신이 원하는 부분도 있지만, 나로서도 감사하다. 오랜 기간 해오던 바다 사업을 접고, 무엇인가에 열정을 다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될까.
아버지 동년배 분들은 건강상의 문제로 일선에 물러났거나, 하릴없이 망중한의 시간을 보낸다. 시골집의 창고를 손님 접견실로 개조한 것은 아버지가 얼마나 이 일을 의미 있고 즐겁게 하고 싶은지 여실히 보여주는 방증이다. 내가 중학교까지 썼던 30년도 더 지난 나무 책상을 아버지가 대물림 받아 사용 중이다. 켜켜이 쌓인 마을주민들의 전화번호와 각종 서류더미들이 마을 이장이란 일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50대를 향하는 길목에 40대 후반의 내게, 아버지의 여정은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진다. 더구나 직장에서 약간의 권태기와 함께 사그라지는 열정에 다시 군불을 지피는 땔감이 되고 있다. 아버지에겐 일처리에 있어 넉넉한 여유와 방향이 느껴지는 고수의 향기가 있다. 대화 속에서 오가는 문답이 그 깊이를 가늠케 한다. 나는 언제쯤 그런 업의 경지에 오를지, 오늘도 직장에서 좌충우돌 생존의 연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