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할머니와 10살 아들의 특별한 만남

시간의 단차 속에 시작과 마무리를 생각하며

by 라떼파파

불가항력(?)으로 태어나 어떤 시대를 만날지는 그 사람의 운명이라지만, 90년이란 시간의 갭을 보여주는 대상을 나란히 보고 있으면 기분이 묘하다. 100년에

가까운 시간의 단차가 발생한 셈인데, 시작과 마무리, 젊음과 늙음, 언어의 질감 등 극과 극을 향한 대척점이 강렬하다.


할머니는 올해 100세. 요양원에 계신다. 휠체어에 의지해 하루의 단상을 직조한다. 요양원에서 진행하는 여러 활동에 상당히 적극적이었다는 데, 요즘은 그 열정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쇠약해지는 몸과 함께 백 년의 나이는 거스를 수 없는 일상의 제약을 불러오는 것 같다.


아들은 초등학교 3학년에 올라간다. 10살이다. 고사리 같은 손이 제법 길어지고 굵어졌다. 뭉툭하고 거칠었던 언어도 그 세밀함이 더해지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작용과 반작용으로 귀결되는 소통이 훨씬 진화되고 있다.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표현으로 깜짝 놀라게 한다. 알파세대라는 팔색조 제너레이션의 특징을 직접 시전 중이다.




설 명절 직전인 1월 25일 일요일, 고속도로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지체하기 싫어 새벽 5시에 부모님이 계시는 경남 고성으로 향했다. 중간에 삼천포 요양원에 계시는 할머니를 뵈러 갔다. 평택에서 4시간 만에 도착한 우리는 할머니와 면회실에서 약 40분가량 만남을 가졌다.


할머니와 아들의 만남은 지난번에도 종종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왠지 모를 특별한 감정이 밀려왔다. 100세를 맞은 숫자의 상징과 함께 10살을 향한 아들의 만남이 지난번보다 의미를 더한 것은 사실이었다.


검버섯과 붉은 피멍 그리고 패일대로 패인 주름살이 얼굴을 장악한 할머니는 점점 쭈그려 드는 중이었고, 아들은 늘어나는 몸에 이어 점점 구체적으로 모양을 갖춰가는 신체의 확장을 꾀하는 중이었다.


“아이고, 와줘서 고맙데이. 너무 고맙데이.”

“네, … 증조할머니…”

“고맙데이.. 고마워…”


연신 아이의 두 손을 꼭 움켜쥔 할머니는 그 대상이 당신의 증손자인 줄 모르고, 얼굴에 손을 비비며 연신 양볼에 갖다 댔다. 30여 분을 꼼짝도 하지 않고 손을 내맡긴 아들. 미동도 하지 않고 할머니에게 집중하는 모습은 사뭇 현실적이지 않았다. 만약 소설 속 한 챕터를 인용한다면, 나를 포함한 주위 등장인물들은 그 장면을 주시하며 목울대로 말을 삼켰고, 이내 눈시울은 붉게 변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식사는 잘하십니다. 요즘은 이전 같지 않게 침상에 자주 누워 있으려고 하네요. 컨디션은 좋다 안 좋다를 반복하지만, 그래도 그 나이에 정정한 편입니다. 여기 보호사분들이 제일 귀여워하고 사랑합니다.”


같은 마을에서 자란 누나 격인 K원장님의 말에, 안심이 되기도 했지만, 나날이 심해지는 치매에 더해 침상을 고집하기 시작했다는 말이 서글펐다.


“요즘에도 욕을 좀 하십니까? 우리 할머니 한 욕 했거든요? “

“그럼요, 뭔가 맘에 안 들면 욕하지요, 얼마나 찰진데요.”




곧 간식시간이란 말에 요양사는 할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사라졌다. 짧은 면회였지만, 카메라에 담은 아들과 할머니의 맞잡은 두 손이 오랜 시간 기억 속에 단단히 자리할 것 같다. 90년이란 세월의 차이가 빚은 짧은 단상이지만, 인생의 적지 않은 의미를 소환한다.


할머니가 내내 입에 올렸던 “고맙다 “는 과연 당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아들은 꼼짝하지 않고 증조할머니 손을 맞잡으며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여러 감정이 오가는 시간이었다.


누군가는 시작을 향해 달려가고, 누군가는 소멸을 향해 나아가는 지점이 있다. 그리고 그 중간에서 대부분은 지난한 인생과 마주하며 일순간 고군분투하는 중이다. 결국은 좋은 추억과 좋은 시간과 좋은 사람과 좋은 의미를 최대한 많이 채집하는 사람이 승자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나도 할머니처럼 ‘고맙다’를 가슴에 박제하고 싶다. 세상을 향해, 사람을 향해 그리고 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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