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머를 본다는 것
가을이면 으레 '운동회'가 열렸던 국민학교 시절. 만국기 펄럭이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갈 때면 어깨가 들썩이곤 했다. 청군과 백군을 구분하는 머리띠를 감아 두른 채, 어쩜 그리 '꼬맹이들'의 승부욕이 활활 타올랐는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백군 이겨라~" "청군 이겨라~"
하이라이트는 줄달리기와 릴레이 계주. 청과 백으로 나뉜 두 무리는 한치의 양보조차 허락할 수 없다는 듯 종일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했다. 친한 친구조차 청군과 백군의 소속 여하에 따라 루비콘의 강을 건너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도내 대표로 차출된 한 친구는 팔이 부러져 깁스를 한 상황에서도, 오직 소속의 승리를 위해 계주 대표로 뛰기도 했다. 일단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이기는 게 장땡이었던 시절이었다.
곱씹어보면 청군과 백군이란 이분법으로 재단해 확실한 '자기 색'을 갖고 살았던 적이 있었을까. 세상은 청군과 백군처럼 분명한 색깔을 칠하라고 명할 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두 곳을 오가는 '경계인'쯤으로 나를 밀어냈다. 특히 마음이 동하지 않을 경우, 말과 표정은 인지부조화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긍정의 말속에 떨떠름한 표정이 깃드니 얼마나 우스꽝스러웠겠는가. 빈약한 소속감에 젖은 내게 충성을 요구하는 데 지치기 마련이었고, 홀연히 자취를 감추는 데 익숙한 내게 돌팔매질을 한 사람도 드물었다.
살아보니 경계인에게 주는 특별한 자유가 있었다. 경계의 안팎을 넘나드는 보폭의 확장은 삶의 여유를 잉태했다. 특히 회사에서 사내정치와 거리가 먼 나로선 이래저래 스트레스를 덜 받는 편이다. 작년에 받은 건강검진에서는 스트레스 지수가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결과를 얻었다. 보기에 안쓰러운지(난 당신들이 애처롭지만), 한 마디씩 훈수를 둔다. "김 차장, 그래서 회사 생활 제대로 하겠어? 줄이 중요한데...", "사내정치도 회사생활의 일부야. 너무 밀어내지 마시게." 아놔 꽁이다. 그런 보호색(?) 없어도, 회사를 정글판으로 만드는 그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당신들이나 잘하세요~"
'경계인'으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고마운 순간들이 있다. 원색보다 그라데이션처럼 농도가 달라지는 색의 변주가 얼마나 인생을 풍성하게 만드는지. 세상을 향한, 타인에 대한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한 경계의 담장이 철옹성처럼 견고하지 않아 고맙다.
첫째는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오가는 느슨한 경계다. 디날로그(디지털+아날로그) 유형이랄까. 시나브로 세상이 바뀐 줄 알았는 데, 어느덧 '훅'하고 변화가 급습했다. 자각과 실제는 괴리감이 컸다. 디지털이 점령하는 시간은 하루를 비교적 짜임새 있게 직조한다. 그 촘촘하게 연결된 시간 속에서 디지털의 위력을 새삼 느낀다. 디지털이 반갑고 편하며 유용하다는 점에서 시대의 필연이라는 점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기술만 익히면, 자동화란 이름으로 지난했던 업무들이 순식간에 해결된다. 요즘 나도 노션(홈페이지), 워크 플로위(글쓰기), 구글킵(클리핑), 마인드맵(기획) 등 생산성 툴의 가공할만한 퍼포먼스의 위력을 느낀다. 디지털 세상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하지만 마음이 부산할 때쯤 희한하게도 공허함이 밀려온다. 그 공허함을 디지털로 연명할 수는 없기에, 추억에 젖고 향수를 갈망한다. 손 때가 묻은 학창 시절의 일기장을 꺼내 들면, 살며시 입꼬리가 올라간다. 아날로그 향수는 진리다. 지나온 삶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눈이 뱅뱅 돌아갈 정도로 빠르게 회전하는 시대에 역행해 가끔 관람차처럼 느리게 움직이는 아날로그의 노스탤지어를 소환한다.
둘째는 기버(Giver)와 테이크(Taker) 사이의 느슨한 경계다. 나는 매처(Matcher)다. 통계에 따르면 대개 60% 가까이 매처에 속한다고 한다. 기버를 존경하지만 나와는 결이 다른 부류라 여긴다. 자비로 대표하는 부처님 같은 도량을 살아가는 내내 지킬 것 같지 않다. 상황에 따라 기버일 때는 있다. 마음이 움직이고 공감이 극대화될 때다. 이 때는 마음보다 몸이 먼저 움직인다.
테이크는 사실 재수 없다. 모욕적인 말이겠지만, 드물게 이런 사람들이 꽤 있다. 교활하다. 교언영색이라고 했던가? 이런 사람들과 어울리면 삶이 비루해진다. 더러운 먼지를 뒤집은 채로 돌아다니는 느낌이다. 발거 벗은 치욕의 삶이랄까. 이런 부류의 사람들과는 거리두기를 할 수밖에 없다. 나도 때에 따라 테이크의 위치에 서곤 한다. 하지만 기버를 염두하며 짐짓 모른 채 받는다.
셋째는 외향(Extrovert)과 내향(Introvert)의 느슨한 경계다. 성향의 문제다. 어릴 때는 심할 정도로 샤이보이였다. 심지어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남녀공학에 다녔지만, 여학생과 말을 섞은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만큼 수줍음이 많았고 소심했다. 군대를 다녀온 후, 성향이 제법 바뀌었다. 대학교는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하면서 일대 전환기가 찾아왔다.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마주한 느낌. '샤이보이'에서 '대담 보이'로 퀀텀 점프했다. 지금은 글쎄다. 때와 장소에 따라 양단을 오간다. 경계를 허물고 자유롭게 두 곳을 왕래하는 일이야말로 내 삶이 한층 진화했다는 방증이 아닐까.
세상(디지털&아날로그)과 타인(기버&테이크)과 자아(외향&내향)의 경계를 오가며, 느슨하게 만드는 일이야말로 인생의 정수를 만끽하는 삶의 확장판이 아닐까.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이런 경계를 무시한다. 두루뭉술하고 본연의 색깔이 없다며 깔아뭉갠다. 청색과 백색으로 나뉘여야 주장이 바로 서고 상대를 이길 수 있다고 선동한다. 하지만 나는 경계에 갇혀 너머를 보지 못하는 아둔함을 지적하고 싶다. 일부 정치인이 단골 레퍼토리처럼 색깔론을 사랑(?)하지만, 단색은 금세 싫증을 유발한다. 그리고 누구나 단색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 법이다.
경계는 결국 ‘보편’이자 ‘상식’이다. 이도 저도 아닌 무색무취라고 폄훼하지 마시라. 경계 너머를 오가며 타협과 존중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의 아우성이다. 그런 목소리가 쉴 새 없이 사회에 흘러들어 갈 때, 세상은 조금은 더 온기를 더하고 조금은 더 살기 좋은 곳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