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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떼파파 Jan 08. 2021

변화는 '찐'이다!

2020년 변화의 순간을 포획하며

2020년을 복기해보고자 여러 차례 PC 모니터를 켜고 끄기를 반복했습니다. 담을 만은 콘텐츠를 이리저리 매만지다 대뜸 쓸만한 찬거리를 내놓기가 머쓱해지더군요. 그래도 분명한 '변화'는 있었고, 머릿속에 썩히기엔 왠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용량 부족에 버그가 잦은지라 텍스트로 박제해야 훗날 뒤적거리는 찬스가 주어질지 모르니까요.   


제게는 작년 크게 세 가지의 눈에 띄는 흐름이 있었습니다.(주가지수 이야기도 아니고...)


첫째는 '건강의 변화'입니다. 4개월 간 얼마나 긴긴밤을 뒤척였는지 모릅니다. 대장용종 조직검사에 이은 정밀검사가 필요하다는 문자를 받았을 때, 그 떨림과 초조함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다행히 1년 후 내시경 검사로 일단락됐지만, 검진 결과를 들었을 때의 그 장면.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의사의 모호한 시선, 뜸 들이는 말 한마디에 땀으로 흥건했던 손바닥. 거짓말을 조금 보태자면, 한숨 섞인 심호흡만 수 백번을 했습니다. 결과를 알 수 없는 지리하고도 피 말리는 시간과의 싸움을 겪으며, 작게나마 그런 처지에 계신 분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남 일처럼 함부로 조언한다는 것이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말이죠.(제 주위에 그런 분이 계셔서, 직접 겪어보니 알겠더라고요.) 그저 옆에서 묵묵히 응원하고 바라봐주는 것만으로 충분했습니다. 건강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으며, 단단해진 느낌을 받았습니다.         


둘째는 '신체의 변화'입니다. 건강 문제로 우울과 불안이 이어지던 민감한 시기, 이대로 시간을 죽이기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이어트부터 결심했죠. 결혼 이후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불어난 몸무게를 줄이는 데 소홀했습니다. 밀가루 음식부터 끊자는 우격다짐(?)으로 식습관을 달리하자, 약 4달 만에 8kg이 빠지더군요.(신통방통했죠.) 운동을 적절하게 병행했지만, 아무래도 먹는 데서 오는 변화가 제일 컸던 것 같습니다. 억지로 욱여넣었던 옷들도 한결 헐렁하게 들어가며 옷맵시도 살고, 피부 트러블도 없어지더군요. 지금은 밀가루를 완전 끊지는 못해도 예전처럼 폭식해서 얻는 후회를 곱씹지는 않습니다. 


셋째는 '일상의 변화'입니다. 팬데믹으로 일상의 멈춤이 현실화되면서 우리는 미증유의 현실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죠. 작년 추석부터 시작해 고향 가는 길도 아득한 과거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이도 기간을 못 채우고 어린이집을 퇴소하였습니다. 또래들과 어울려 한참 사회성과 규칙을 배울 시기에 엄마와 집콕 모드로 지내는 걸 보니, 제 마음이 여간 안쓰러운 게 아니더군요. 아빠와 노는 것도 시큰둥해지기 일쑤라 제 닉네임이 무색해질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도 외부와의 단절이 가족을 향하면서 끈끈한 유대감을 발휘하더군요. 허공을 오가는 이야기가 매번 엇비슷해도, 그걸 낚아채며 소화하고 내뱉는 일상이 소중하게 다가왔습니다. 지나치기 쉬웠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머릿속에 맴도는 찰나를 포획해 감사일기에 하나씩 가둬두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2020년 묵묵히 내 곁을 지켜준 보석 같은 존재(행위)들이 있었습니다. 3년 연속 100권 이상의 책을 읽었습니다. 나름 지적 허영을 채운답시고 희희낙락했습니다. 텍스트에 묻혀 사는 삶이 좋았습니다. 드라마 '미스 함무리비'의 대본을 집필한 문유석 판사의 저서대로 '쾌락독서'를 즐겼죠. 간헐적이지만 자기 검열(?)을 거치며 꾸준히 글쓰기를 이어온 것도 특기할만합니다. 씀과 블로그에 갇혔던 글쓰기 플랫폼이 브런치로 확장되는 희열을 맛보았습니다. 그리고 힘들고 어렵지만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저를 나태에서 구원해준 고마운 존재였습니다. 이 세 가지는 작년 거센 풍랑의 기세에 맞서 비교적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했습니다.     


변화를 경험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새로운 다짐을 한다는 것. 지루함을 동반한 매너리즘이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대신 성장과 성찰이 인생을 풍성하게 만듭니다. 인생이 늘 기적이라 생각하고, 저는 오늘도 그 속에서 감사의 마음을 배웁니다. 2021년에도 기존의 것은 더욱 벼리고, 새로운 것은 배움의 장으로 여기며 뚜벅뚜벅 한 걸음씩 내딛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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