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의 저지선을 묻다
그날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팀 조회시간이었다. 일순간 팀장의 모두까기 향연이 시작됐다. 열폭은 이성을 소거시켰고, 죄다 충동적인 감정만이 등장했다. 비난과 뒤섞인 그의 일장 연설(?)은 30분가량 계속됐다. 일방의 감정에 휩쓸린 팀원들은 고개를 숙였다. 저마다 보일락 말락 한숨이 새어 나왔다. 폭력의 잔해더미에 갇힌 팀원들은 쏟아지는 말폭탄을 그대로 받아 안았다. 아무리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지만, 삶이 비루해지는 순간이었다.
저널리스트 권석천 기자가 [사람에 대한 예의]라는 책에서 말했던 '늙은 애'처럼 느껴졌다. 일방으로 흐른 말은 침묵으로 이어졌고, 그 속에서 느낀 자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다만 개인을 향한 칼끝이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랄까. 다음날 그는 주체하지 못했던 감정에 대해 사과했다. 하지만 그 찝찝한 여운은 계속됐다.
다음날 아침 파트장은 팀장의 사과 직후 그의 언행에 대해 조목조목 반기를 들었다. 그 반기 속에는 논리와 이성이 포진했다. 내심 '사이다'라고 느꼈다. 파트장의 포효 속에, 팀장은 일순간 고꾸라졌다. 논리를 이탈한 그의 궁색한 변명은 핑계가 되지 못했다. 파트장의 완승이었다. 군대였다면 하극상이었겠지만, 이성이 기세 좋게 감정을 꺾었다. 그것도 완벽하게.
하지만 나중에 파트장이 내게 휘갈기듯 던지는 말은 내심 충격이었다. "넌 그 상황에서 왜 말을 못 하는데...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왜 보고만 있어?" 목소리에 실망과 힐난이 동시에 느껴졌다. 또다시 비루함이 소환됐다. "제가 그 상황에서 똑같이 되받아치면,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 같았어요."라고 말하자, 끌끌 혀를 찼다. 일순간 비겁자로 낙인하는 그의 눈빛을 피하며, 나는 긴 한숨을 내뱉었다. 일방의 화살이 연이어 꽂히는 나날이었다.
집에 오자마자 오늘 있었던 일을 아내에게 털어놨다. 응어리진 감정을 받아달라는 응석이었다. 하지만 표정에서 읽힌 그녀의 심기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이번 일과는 별개로 남편이 주말에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은근 부아가 돋아 있었다. 오가는 말이 뚝뚝 끊기면서 또다시 일방의 감정이 흘렀다. 본전도 못 찾은 신세타령에 또다시 비루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애초부터 생각의 교집합을 강요하며 묶으려 했던 나의 과욕이었을까.
'일방'은 타인을 향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특히 감정만으로 '일방'의 흐름이 이어지면, 그게 그렇게 비참할 수가 없다. 동시다발적으로 치고 들어오는 '일방'의 말 폭력에 노출된다는 건, 새끼치기를 하듯 타인에게도 똑같은 폭력을 자행하는 잠재적인 가해자가 되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하면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일방'을 강요했던 적이 없었을까. 이성과 논리는 무시하고, 오로지 감정만으로 상대를 깔아뭉갰던 적이 말이다. 순간 나 자신이 뜨악해진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아픔과 상처를 주며 행여 '일방'을 당연시하지 않았는지 복기한다. 당하고서야 그 비릿하고 처참한 느낌을 알 것 같다. '일방'의 선을 넘지 않도록 조심할 것을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한번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