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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떼파파 Feb 03. 2021

책장 한 켠에 시집이 채워진다는 건

맑고 투명한 여백의 퍼포먼스

나는 시린이(시+어린이)다. 시폭에 담긴 말랑말랑한 감성은 사랑하지만, 시 속을 직접 유영하라면 이방인에 다름없다. 작법도 독해도 낯설다. 그럼에도 책장 한 켠에 시집이 빼곡하게 채워져 간다. 그걸 바라보는 것만으로 왠지 모르게 마음이 설렌다. 자기 계발서와 경제서적이 책장의 절반을 장악한 가운데, 난데없이 시집이 이 그 틈을 파고드는 것이 반갑다. 아직 죽지 않은 '감성'을 확인하는 뿌듯함이 있다.


책장에 시집이 하나 둘 쌓여가는 데는 이유가 있다. 2년 전 우연히 시작한 시 필사가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 우연이 인연이 되어 지금은 온라인 채팅방에서 시 필사를 공동 운영하고 있다. 4주씩 진행하는 기수가 벌써 21기를 맞았으니,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감개무량하다. 김수영, 윤동주, 이육사, 천상병, 기형도, 김소연, 이병률, 한강, 허연, 나태주 시인에 이르기까지 필사로 거쳐간 시들이 가슴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리고 곧 심보선, 이현호, 허수경 시인을 차례로 만난다.     




출근 전 이른 아침마다 하나의 시를 읽고 음미하며 필사하는 행위는 이제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필사방의 운영지기로서 강제된 책임이지만, 매일 15분 남짓 펜에 힘을 주고 사각거리는 시간은 충만한 행복을 선물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때론 난해한 시와 마주하면 문해력과 감수성 부족을 자책하지만, 필사방 여기저기 어렵다는 하소연(?)이 들려오면, 그제야 안도감이 든다. '나만 어려운 것이 아니었구나..' 그 어려움이 수수께끼 풀 듯 하나씩 벗겨지면, 마치 숨은 보물을 발견한 듯 아이처럼 신나기 그지없다. 무엇보다 즐거운 일은 산문이 주지 못한 운문의 매력을 발견할 때, 시만이 가진 특유의 찐 맛에 흠뻑 빠져든다는 사실. 흡사 시에 중독된 기분이다.


즐거움은 또 있다. 시 필사방에서 몇몇 분의 낭독을 들을 때면, 청각이 주는 자극은 늘 새롭고 신선하다. 눈으로 음미하는 텍스트와는 질감이 다르다. 오감으로 받아들이는 예술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느낀다. 멋진 배경음악과 어우러져 시는 그 자체로 노래가 된다. 의미가 확장되는 황홀한 경험을 한다. 시인들이 왜 낭독을 즐겨하는지 알게 되었다. 보는 것만으로 투영하지 못한 시의 이면이 듣는 귀를 통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고즈넉한 장소를 찾아 낭독에 귀 기울이면 시의 재미는 배가된다.




하지만 시는 여전히 넘사벽이다. 자작시를 한 두 번 써보긴 했지만, 매 순간 어렵고 힘들다. 한 문장은커녕 단어 하나 심상에서 맴도는 것을 낚아채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생각지도 못한 시인의 문장을 접할 때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와, 어떻게 이런 문장을...' 그러면서 여운은 길다. 위로의 강도는 세다. 공감의 확장은 넓다. 그런 시를 써보고 싶은 욕심, 결국 '나'와 '너'와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길어 올리는 '인생의 정수'가 아닐까 생각한다.


차가운 머리보다 따뜻한 가슴에서 횃불이 되어 들불처럼 번지는 시의 잔해들. 그 잔해조차 누군가에게는 촛불이 되어 삶의 소중한 위로가 되어주리라 믿는다. 책장에 시집이 하나씩 채워진다는 것, 결국은 내 삶에 맑고 투명한 여백이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시의 매력에 빠지고 싶은 분들은 아래의 '21기 시필사 모임'에 신청해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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