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이력서를 쓴다는 건

40대 중반에 마주한 혹독한 현실

by 라떼파파

"안녕하세요? 김 OO 차장님이시죠? 저는 OO회사 채용담당자 박 OO라고 합니다. 우선 저희 회사에 지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희가 채용 공고를 낸 포지션은 주니어입니다. 시니어는 따로 있는데 혹시 '공인노무사' 자격증이 있으신지요?"

"... 아니오. 제가 지원 대상을 몰랐네요."


낮술을 쭉 들이킨 것처럼 얼굴이 불콰해졌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찾아드는 안도. 아직은 시장가치가 있다는 신호일까. 이력서를 보고 전화까지 왔으니. 다만 나이를 저울질하고, 전문 자격증을 들이대니 할 말이 곤궁해진다. 황망하게 전화를 끊긴 했는데, 순간 아득해지는 현실이다. 지금 직장이 난파 직전에 있다 보니, 무라도 쓸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며칠 전 채용 사이트에 부랴부랴 이력서를 등록했다. 두 곳에 지원서를 냈는데, 다음날 한 곳에서 연락이 왔던 것. 하지만 말로만 듣던 현실의 버거움만 통렬하게 느꼈다.


갈 곳이 막막해지는 요즘이다. 딱 사오정(45세가 정년)에 걸린 나이. 코로나와 겹치면서 이직 시장은 거칠고 날이 섰다. 다음날 헤드헌트에게서 연락이 왔다. 경남 김해의 작은 중소기업의 부장 직급을 추천했다. 김칫국부터 마시기 싫은데 핑계를 댔다. 근무지역이 생각보다 거리감이 있다고. 핑계로 합리화하긴 했지만, 부장을 맡을만한 깜냥이 사실 두려웠다. 한편으론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냐며 마음 한 곳에서 쓴소릴 내뱉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씁쓸하다.




이력서를 다시 쓴다는 것, 40대 중반에 선 지금 분명 자발적 의지와는 거리가 있다. 가치를 알아보는 기회(?)는 될지 언정, 변변찮은 경력과 먹을 만큼 먹은 나이는 사회적 낙인과 뒤섞여 머뭇거림을 종용한다. 더구나 연봉 상승과 새로운 기회의 시간이 아닌 하릴없이 밀려나는 증표이기에. 특히 올해 1월부터 급여가 반토막 나며 당장 먹고 살 생계와 마주하다 보니, 그저 가족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그러면서, 지금껏 든든한 보험인 전문 자격증 하나 구비하지 못했냐며 자책한다. 한편으론 15년 넘게 한 회사에 재직하며 따박따박 승진하고 나름 인정받았다는 점을 항변하지만, 이게 무슨 의미인가 싶어 급속도로 우울감이 밀려온다.


결국 최상의 시나리오는 지금 직장이 기사회생하는 것. 5천 명에 이르는 종업원이 근무하다 보니, 언론에서도 회사 이름이 오르내린다. 한참 매각이 진행 중인데, 그 성사 여부에 따라 상황이 바뀔 것 같다. 만약 청산까지 간다면, 이직 공백을 최소화하며 불안과 충격을 최소화하는 데 올인할 수밖에 없다. 이력서를 다시 꺼내 들며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것도 미리 예방주사를 맞자는 차원에서다.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40대 중반에 거리로 내몰릴 수 있다는 건 상상조차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라의 녹을 먹지 않는 이상 언제든지 냉혹한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질 수 있는 현실. 그 비릿한 기운을 온몸으로 체감하는 요즘이다. 일단 주위의 시선이 지독하도록 슬프다. 그저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는 것. 그래서 마음 무장을 단단히 하며, 여러 대비책을 떠올린다. '될 대로 돼라'는 식의 포기만큼은 하지 말자고 입을 꽉 다문다.




코로나가 트리거가 되면서 항공업, 여행업, 서비스업 등의 무급휴직이 장기화되고, 이어 집단 해고가 속출하는 세상이다. 역으로 미래 4차 산업에 초점을 맞춘 스타트업, IT 기업들은 역대급 호황을 누리며 인력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지금 다니는 직장도 사원과 대리들의 이직 러시가 이런 상반된 흐름을 여실히 보여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업무연락으로 ‘면직’ 발령을 보면서, 현실을 체감한다. 급여 체불이 계속되면서 임계점에 다다른 그들의 곤궁한 처지를 이해한다. 평생직장이 아니라 평생직업이 있어야 한다는 교훈이 뼈를 때리는 요즘이다. 그것도 먹고사니즘과 직결되다 보니 그 강도와 빈도는 크고 잦을 수밖에 없다.


"당장 내일 떠날 것처럼 준비하고, 평생직장처럼 일하라." 모순이 주는 교훈을 가슴에 새겨본다. 40대 중반에 이력서를 다시 쓴다는 건, 정녕 슬픈 일이다. 밀려나는 삶의 표식이 될까 봐. 그리고 삶의 방향을 선회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도래했음을 뜻하기에.


그래도 먹고살려면 어쩔수 없다. 그것이 생의 숙명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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