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개의 '숨구멍'을 만들다

인생이란 '뻘 속'에서 살아남기

by 라떼파파

갯벌에 가면 여러 개의 숨구멍이 있다. 조개, 쏙, 짱둥어, 논게, 낙지까지 생존을 위한 치열한 삶의 터전이다. 포획과 침입의 방패막이로 뻘 속으로 잠입하는 그들의 생존기는 눈물겹다. 오백 원만 한 동전 크기의 숨구멍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존재를 알리는 표식이 된다.


치열한 생을 중심으로 밀도 있는 시간을 즐기는 사람이 많겠지만, 더러는 일상이 던지는 다양한 고민과 격정 앞에 헤어 나오기 힘든 '뻘 속'으로 침잠하기 마련이다. 일순간 귀찮고 포기하고픈 궁극의 아픔. 그것은 나의 문제일 수도, 주위 환경에 노출된 어쩔 수 없는 고통의 조각일 수도 있다. 사랑하는 이들과의 관계를 통해 이런 통증을 견뎌내면서 마음을 다잡지만, 밀려오는 공허감에 끝없는 사선으로 밀려나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지난한 굴곡에 맞서 경험과 관록이 주는 쏠쏠한 팁(Tips)들이 있다지만, 그게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을 때가 있다. 걱정의 가짓수가 아니라, 그 던지는 무게감에 짓눌릴 때다. 이들은 쉼 없이 나의 인생을 간섭하고 삶을 저울질한다. 거울을 볼 때마다 눈에 띄는 흰머리와 깊어지는 이마의 주름골이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그래서 2년 전부터 여러 개의 숨구멍을 만들기 시작했다. SOS를 보내는 구조의 시그널을 바람처럼 흘려보내다간 부지불식간에 수습할 수 없는 낭패가 닥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물론 '가족'이란 든든한 울타리가 존재의 당위성을 증명하고, 살아가는 목적을 굽어 살폈지만 이것만으로 인생이란 뻘 속에서 온전히 살아남기란 힘들었다.


시행착오는 있었다. 여러 개의 숨구멍을 냈지만, 어떤 구멍은 시간이 지나며 스스로 닫아버렸고, 처음에 시큰둥했던 숨구멍은 활기와 생기를 더하고 있으니. 그러면서 뒤틀렸던 호흡은 가지런해지고, 일상은 편안함을 투척한다.


나의 숨구멍은 이렇다. '감사일기'는 생의 비루함을 찬란함으로 변색시킨다. '달리기'는 상념을 무념무상의 경지로 끌어올린다. '명상'은 이전투구의 여러 감정을 일순간 평정한다. '시 필사'와 '글쓰기'는 내면의 결핍을 확인시키며 생의 질서를 부여한다. '독서'는 긴 호흡으로 세상의 서사를 돌볼 수 있는 여유를 준다.


부침의 공간에서 그래도 쉴 수 있는 여러 개의 숨구멍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다행이다. 물론 시도 때도 없이 인생은 뻘 속으로 나를 잡아끌지만, 이들이 있기에 질식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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