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살의 아빠와 6살 아들의 나들이

사소함이 굉장한 행복으로 차오르는 순간을 기억하며

by 라떼파파

빼꼼 고개를 내밀며 아이가 방으로 들어왔다. 7일 일요일 아침 6시 47분. 한참 집중해서 읽던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리딩 리듬이 깨졌다. 문장의 조합이 철학적 사색을 요하는 지점이 많은 책이라, 괜스레 속말을 뇌까린다. '에고 요놈아, 좀 더 자지...'


운동, 명상, 독서까지 새벽 4시부터 한달음에 내달린 즐거운 일탈(?)은 막을 내리고, '육아'라는 현실의 셔터문을 열었다. '웰컴 투 육아'의 서막이다. 주말 늦잠이 보약이라지만, '육아'라는 현실과 마주하면 주말 새벽이야말로 오롯이 주어진 나만의 쇼타임이다. 오늘도 새벽 공기를 가르며 8km를 뛰다 걸었다. 동시에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BBC 글로벌 뉴스를 들으며 영어를 향한 향학열을 불태웠다. 일요일의 시작이 알차게 차올랐다.


아내가 아침밥을 준비하는 동안 아이가 요즘 재밌어하는 주사위 놀이를 함께했다. 오늘 미장원 파마 계획이 있다는 아내 대신, 아들과 나는 근처 공원에 가기로 했다. 시냇물에 조약돌 던지기를 좋아하는 아이는 벌써부터 신이 났다. 어릴 때 나도 바닷가에서 몽돌 던지기를 그리 좋아했다는 데, 부전자전인가. 별의별 모습에서 공통분모를 찾는다.




10시 30분쯤 아이를 데리고 공원에 갔다. 경칩이 갓 지난 터라 꽃망울이 피기 시작한 공원은 상춘객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아이 손을 이끌고 시냇가로 거슬로 올라간 나는 더듬더듬 돌들을 주워 아이 손에 건넸다. "피~ 융, 철썩~" 돌들이 잔물결의 표면을 탄주하는 순간, 아이의 입가에 까르르 웃음이 번졌다. 햇볕에 투영된 아이 얼굴이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 '천사'가 나타났다. '오, 심쿵!'


시냇물과 돌만 있으면 신나서 어쩔줄 모르는 아들, 그 열정을 응원하마^^

가성비 최고의 다이소에 들러 종이접기를 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의미를 지닌 대화는 아니었지만, 아내 없이 부자만의 데이트는 그 자체만으로 뭉클함이 몽글몽글 피어났다. '엄마 바라기' 아들도 아빠와의 나들이가 즐거운지 연신 싱글벙글했다. 그 티없이 웃는 얼굴을 보노라면, 그리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관계'는 이런 시간이 층층이 누적되면서 촘촘해지지 않을까. 이런 순간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지 모른다. 그 시간을 언젠가는 추억으로 회상할 날이 오겠지만, 나는 '지금' 을 부여잡고 '의미'를 덧씌우며 마음 한 곳에 박제한다.


45살과 6살의 부자관계. 늦은 나이 이런 감상과 감회에 빠져든 나를 혹자는 "'아직도' 순수하네요?"라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아직도'에 스타카토가 찍힌 부사가 지독하게 슬프게 느껴진다. 사회의 때를 몸안에 욱여넣어 '순수'의 결핍을 당연시하는 사회적 시선이 오히려 받아들이기 버겁다. 그렇다고 사회와 유리된 삶을 사는 것도 아닌데, 쓸데없는 참견이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때론 "철이 덜 들었다"라는 말로 등치하는 현실은 무척 서글프기까지 하다.




두 시간 남짓 멋진(?) 여정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배고픈 아이를 위해 나는 아내가 만들어놓은 볶음 양념을 프라이팬에 올려 데치고, 밥과 비벼 계란 볶음밥을 완성했다. 깨끗하게 비운 아이 밥그릇을 보며, 왠지 모를 뿌듯함이 샘솟았다. 클리셰는 느껴지지만 '자식 밥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고 했던 부모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연중 52번의 일요일 중 하루에 불과하지만, '평범한 일상'이 일순간 다른 차원의 행복으로 바뀐다. 물론 회사 상황이 불안하고, 모아놓은 돈은 없고, 아이는 유치원 등원에 힘들어하는 등 현실이 빚은 무거운 고민들이 첩첩이지만, 그래도 오늘처럼 이 충만한 감정이 좋다. 물론 감정은 부표처럼 떠다닌다. 그리고 잠시 머물렀다 다시 제 갈 길을 찾아 유유히 흐르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행복하다는 건,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하다는 의미다. 기쁨과 웃음의 머무름이 강할수록 행복이란 감정은 확장되기 마련이다.


잠들기 전 아들에게 배 방귀를 했다. 가족 모두 파안대소하는 여정까지 하루를 마무리하며, 그 '사소함'이 '굉장한 행복'으로 전이될 때 인생은 더할 나위 없는 포만감으로 불러오는 것을 느꼈다. 그 기분 좋은 포만감을 떨치기 싫어 텍스트로 직조하는 지금, 당시의 생생한 기억이 심상에 머무를 때마다 나 역시 입가에 미소가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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