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주는 회사'로 만드는 법

성장, 수양, 사회성 세 마리 토끼를 잡는 법

by 라떼파파


《아낌없이 주는 나무》( 영어: The Giving Tree )에서, 나무는 소년이 어린시절부터 노인이 될 때까지 자신이 내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베푼다. 급기야 밑동까지 차지한 소년의 끝도 없는 이기심에 화가 날 법도 하지만, 나무는 미련할 정도로 자신의 몸을 갖다 바친다. 나무의 크고 깊은 도량에 측은지심을 가진 것도 사실이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가당찮은 일인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곳이 있다. 놀랍게도 직장이다. 이 무슨 뜬금포인가 싶지만,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제대로 활용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예전 후배들 앞에서 번데기 왕주름(?) 잡던 시절, 나는 술만 들어가면 일장연설을 하곤 했다. "라떼는 말이야..."처럼 꼰대 멘트는 아니었다. 주로 회사를 최대한 이용하라고 직언했다. 회사가 주는 다양한 기회를 엿보고, 그곳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취하라고. 공자님 말처럼 고리타분하고, 말이 던지는 현실감이 눅눅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후배들에게 던진 일갈은 유통기한이 없다고 생각한다.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는 배움의 기회(성장)로 삼아라고.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사실 제일 중요한 덕목이다. 직장에는 뭐든 배움이 널렸다. 여기서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책을 끼고 학습하고 암기하는 대상이 아니라, 살아있는 공부를 할 수 있는 최적의 기회를 취할 수 있다는 뜻. 업무와 연관될 수도 있고, 틈틈이 개인 발전을 위해 회사의 여건들을 활용할 수 있다. 나는 주 3회 전화영어를 신청하며 어학의 기회로 삼았다. 선착순이라, 수강신청 시기만 되면 부리나케 교육 사이트에 접속해 빛과 같은 속도로 수업을 신청했다. 공짜로 어학 기회까지 얻다 보니, 횟수가 쌓일수록 회사에 감사한 마음이 가득했다. 배움의 생생한 터전이 따지고 보면 회사만한 곳이 없다.


둘째는 마인드 성찰의 기회(수양)다. 또라이 보존의 법칙이 통용되는 곳이 회사만큼 적나라한 데가 있을까. 직급에 따라 격파술이 다르게 움직인다. 궁극적 목표는 마인드 성찰의 기술을 연마하는 곳으로 만들라는 것이다. 마음이 부서지고 갈라지고 찢어지는 일들이 다반사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견고한 강심장이 움트기 시작한다. 이것만으로 사회에서 부딪치는 다양한 사건사고에 대항력을 갖추는 적절한 연습무대가 될 수 있다. 인간군상의 다양한 민낯을 보면서, 치밀한 실전을 통해 각개전투를 도모하는 곳으로 거듭날 수 있다.


셋째는 관계의 기회(사회성)다. 아무리 임금을 목적으로 헤쳐 모였다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다. 개중에 마음 맞는 사람이 있고, 아주 드물지만 존경하는 사람이 나타날 수 있다. 어차피 독야청청 모드가 아닐 바에야 회사에서 관계를 맺는 것은 절호의 기회다. 내겐 딱 두 명의 지인이 있다. 16년을 일했음에도 다행히 두 명은 건졌다. 경영관리팀에서 근무하는 P형은 예전 홍콩 여행을 함께 했을 정도로 친하다. 가끔 커피 한잔하며 시름을 털어놓으면, 그새 개운하고 몽글몽글해진다. 대개는 수더분한 전략으로 관계를 맺는다. 가까이 하지도 멀리 하지도 않는 관계의 적정한 거리를 조율한다. 그러면 해코지도, 뒷담화 대상에도 열외가 될 확률이 높다. 사실 직장에 쏟을 에너지를 가정으로 치환하는 게 이득임을 알기에, 불가근불가원 전략은 축복과도 같다.




성장, 수양, 사회성이란 선물을 아낌없이 주는 곳. '일'로 묶여 월요일마다 가기 싫다고 늦장을 부리지만, 가만히 보면 이만한 곳도 드물다. 사실 사고의 프레임을 어떻게 가져가고, 관계의 시선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회사 활용법은 180도 달라진다.


지엽적이고 편협한 마음만 묶어둘 수 있다면, 직장은 개인의 삶에 상당한 통찰과 성장의 기회를 준다. 적어도 그런 마인드로 임한다면, 직장인으로서의 활력과 생기는 덤으로 따라올 것이다. 물론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몽땅 내어줄 수 있는 회사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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