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배 세 배, 덤으로 사는 비결
"니는 우찌 그리 소심하노?"
"(웬 뜬금포) 뭐라카노? 내가 와 소심한데, 세심한 거지. 니는 그것도 모리나?"
'소심'과 '세심'은 한 끗 차이지만, 말을 받는 입장에선 극과 극이다. 예전 친한 친구 중 한 명이 이래저래 빈정 상하는 말을 던졌을 때 침묵으로 응수하면, 그가 도로 툭 내뱉는 무기가 '소심'이란 부메랑이었다. 어찌나 짜증 나고 이가 갈리던지. 단박에 반박하며, 단어의 결을 바꾸곤 했다. 겁쟁이와 옹졸함이 '소심'의 표상이라면 '세심'은 따뜻하고 정겹고 사람 친화적이기에.
일상이 고장 날 때 우리는 산산조각 난 마음을 부둥켜안고 '심연'속으로 빠져든다. 부서지기 쉬운 감정을 고스란히 노출한 채 여기저기 삶의 전장을 누빈다. 날아드는 고성과 막말을 용케 피하지만, 은근히 부아를 돋우는 정체모를 반격에 심장이 으스러진다. 대비조차 하지 못한 방심도 불찰이지만, 그 말끝이 어찌나 맵고 쓰던지, 흉기로 돌변한 말의 파편은 여전히 심장을 옥죈다. 괜스레 허공에 대고 눈물을 훔치며 툭 튀어나온 목울대를 삼킨다.
하지만 여리고 섬세한 삶의 결이, 감정의 결이, 숨의 결이 이런 삶의 최전선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안식처가 되어준다. 나아가 소소한 기쁨을 포착하는 능력을 배양하며 인생의 서사에 크고 작은 재미를 불러들인다. 미세한 즐거움조차 어떻게 해석하고 용해하느냐에 따라 일상을 건드리는 행복의 강도와 크기가 바뀌기 마련이다. 미약하고 섬세한 부분조차 껴안을 수 있는 '세심함'이 있다는 건, 세상의 이면에 감춰진 기적을 귀신같이 포착하며 세상과 활발하게 조율하는 능력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 '기쁨의 궤적'을 알아차리는 것은 무덤덤하고 무미건조한 사람보다 두 배 세 배 아니 열 배의 삶을 덤으로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때문에 '세심'이란 감정을 잘만 다듬으면, 나와 주위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 때론 '세심함'이 던지는 일거수일투족이 피곤하다고 느낄 법도 하지만, 한편으론 생존을 향한 촉수가 그만큼 예리하다는 증거다. 이전에는 세심함을 마냥 밀어내려고 했지만, 이제는 인생의 운치를 더하는 훌륭한 연장이 된다. 예컨대 아내와의 팽팽한 기싸움을 한 뒤 팽팽하게 날이 선 감정을 무디게 만드는 것이 바로 세심함이다. 또 아이의 심리를 이해하는 도구로서 혁혁한 공을 세운다. 그러면서 아빠로서 제대로 아이를 챙기지 못한 데 대해 반성의 기회로 삼는다. 일로 만나는 사람과도 세심함은 여러모로 빛을 발한다. 단순한 거래를 넘어 타인의 삶을 공감한다는 것은 내가 쥔 한 줌의 마음 볕을 나누는 의미 있는 일이다.
사실 아이도, 아내도 '세심'한 편이다. 예민하다는 말과 교집합을 이루지만, 이 또한 우리 세 식구의 장점으로 승화 중에 있다. 이른바 세상의 미묘한 흔들림을 알아차리고 적절하게 대비할 수 있는 세 개의 무기를 가진 것과 같다. 세심하고 예민하면서 섬세하다는 것, 결코 소심과는 짝지을 수 없는 삶의 무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