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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떼파파 Jun 02. 2021

글쓰기와 쉼표

또다시 무언가 쓰고 싶어졌다

4월 2일 이후 두 달 가까이 브런치에 글 배급을 끊었다. 곡기를 끊은 만큼 마음이 허기졌다. 키보드를 다시 누르기까지 두 달 가까운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동안 심상에서 떠오르는 온갖 부유물을 걷어내며 자족하며 썼던 글들이 떠올랐다. 그러다 내심 공백이 주는 아찔함이 일었다. 이러다 글 쓰는 공간으로 영영 발을 들이지 못한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것도 문득. 


두어 달의 공백기를 가지며 나름 숨 고르기를 했다. 매일 썼던 글은 아니었지만, 글 자체가 주는 의무감과 압박감에서 벗어나 호흡을 가지런히 만들었다. 물론 지금도 글럼프 상태다. 그럼에도 쓰기를 통해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는 숙명의 기운을 느꼈다. 텍스트로 단장한 글 속에서 훗날 생의 족적을 더듬을 수 있기에, 이 지난한 행위를 멈춰 선 안된다고 말이다.


공백기를 갖기로 한 것은 일단 생각을 활자로 토해냈을 때의 쾌감이 줄어든 것이 첫 번째 이유였다. 감흥과 울림을 강제해야 한다는 자기 주문에 나도 모르게 심신이 짓눌렀는지 모른다. 가끔씩 기성 작가들조차 절필을 선언하는 경우를 보는 데, 무릇 비교 대상은 아니더라도 그 너머의 마음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바닥 뚫고 거침없이 지하로 직진 중인 회사 상황도 글쓰기에 인색할 수밖에 없었던 두 번째 핑계다. 물리적으로 주어진 시간보다 정신적인 피폐함이 가득 들어찼다. 현실과 유리된 글쓰기를 도저히 이어갈 수가 없었다. 16년 만에 기웃거린 이직 시장의 냉담한 현실과 실무 면접의 참담함이 얽히고설키면서, 글쓰기는 자연스레 뒷전으로 밀리게 됐다.

 



글쓰기에도 잠시 쉼표를 찍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어차피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가 아닌가. 심드렁한 호흡을 늘어뜨리며 길게 한숨을 뱉고 나면 속이 후련해진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에 앞서 왜 글을 쓰는지 찬찬히 돌아봤다. 그리고 글을 통해 얼마나 내가 성장했고, 행여 누군가 내 글을 읽고 공감이 스며들 지점은 있었는지 생각했다. 글쓰기와 연결해 인생의 밀도를 높이는 묵상의 시간이었다.


가끔씩 아내에게 늙어도 돈 들이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취미가 있다고 말한다. 그중 하나는 단연 글쓰기다. 글쓰기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을 씨줄로 나란히 놓고, 삶의 촘촘한 질문으로 구성된 날줄로 엮어낸다. 그리고 굳이 수많은 질문에 일일이 답을 찾지 못해도, 그 질문과 답을 찾으려는 노력만으로 생의 맛을 제대로 음미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첫 번째 단편소설이다. 그에게 아 소설을 쓰게 된 동기를 묻자 간단한 답변이 돌아왔다. “갑자기 무언가가 쓰고 싶어졌다. 그뿐이다. 정말 불현듯 쓰고 싶어졌다.”


두 달만에 나도 무언가 쓰고 싶어졌다.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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