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를 의탁하는 일

실패의 귀결은 자명하다

by 라떼파파

3년 전 이직을 결심했을 당시, 마음속 결정은 어느 정도 내렸지만 내심 신뢰할 만한 지인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한결같은 이야기가, “지금 다니는 곳은 미래가 없다”, “옮기려면 기회가 닿았을 때 결심해라”, “변화는 숙명이다” 등등 이직은 불가피하다는 의견뿐이었다.


결론은 대실패. 원하는 직무도, 관계도, 커리어도 아닌 어정쩡한 상황에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마저 줄다 보니, 피폐하고 비루했던 시간을 보냈던 적이 있었다. 고민의 치열함 대신, 타인의 언어에 믿음을 저당 잡히다 보니, 어리석음이 빚은 자충수가 아닐 수 없었다. 다행히 새로운 그룹에 인수돼 이전 회사는 한결 상황이 나아졌고, 나는 때마침 ‘재입사’라는 행운으로 복직하게 되었다. 해피엔딩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내면이 단단하고 주도적인 삶을 사는 이라면, 중요한 결정에 있어 타인의 의견은 단순한 레퍼런스로 작용할 것이다. 그게 안되면 자기만의 색은 바래기 마련이다. 일찍부터 자기 주도적으로 삶을 해석하고, 삶의 선명도를 키우며,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개인 서사를 남에게 맡기지 않고 스스로 작성하는 사람들. 타인에게 인생 편집권을 허락하지 않고, ‘화이부동’의 생각으로 어울림의 삶을 개척하는 사람들. 존재를 의탁하지 않음으로써 인생의 윤슬이 반짝거리는 사람들이다.



자기 존재를 믿고, 주도적으로 사는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학습하는 사람들이다. 믿음의 근거를 타인의 말 몇 마디에 흔들리지 않는다. ‘솔깃’이란 원초적인 본능을 사전에 억제한다. 학습을 통해 다져진 밑바탕이 단단하다. 논리의 정합성을 가지고 확신의 근거를 늘려간다. 배움은 결국 자기 주도적인 삶을 가능케 하는 삶의 모태가 된다. 존재의 의탁이란 있을 수 없다.


둘째는 성찰하는 사람들이다. 결과의 좋고 나쁨을 떠나 레슨런을 배우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되려 성장의 발판으로 삼는다. 부지런히 레퍼런스를 쌓아가며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그 분석을 바탕으로 어리석은 결정을 반복하지 않는다. 삶의 결이 나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셋째는 현재를 사는 사람들이다. 과거의 후회도 미래의 불안도 그들에겐 통제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는다.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감으로써, 삶을 극대화한다. 현재에 충실하다 보면 본인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동력이 된다. 과거에 얽매인 삶이 미련으로, 미래에 저당 잡힌 삶이 막막함과 해후할 때, 현재는 삶의 확장을 가져온다.




존재를 의탁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권위와 덕망을 얻는 사람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 단계 더 생각해 보면, 자라온 배경도, 성정도, 능력도 제각각인 상황에서 그들의 조언을 품고 발아시킨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 아닐까.


요컨대, 타인의 레퍼런스를 모으고, 레슨런을 통해 성찰의 시간을 가지면서, 과거와 미래가 아닌 현재를 살아간다면, 존재를 의탁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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