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와 고양이 (1)

누군가 창문을 두들기는 것 같았다.

by 지훈

한참 잠에 빠져있었는데.

이 시각에 누구지?

왜 벨을 안 누르고 창문을 두들기지?

눈을 비볐다.


뭐지?

바람인가?

싶어도 해서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고 뭉개고 있었다.




긁적긁적.

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아직 어두웠는데.

창문에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덜컥 덜컥.

가만 들어보니 두들기는 것이 아니라 긁는 것 같은 소리였다.

누군가 일부러 살금살금 다가와 남의 집 창문틀을 장난 삼아 흔드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겁이 살짝 들었는데.

생각해 보니 이 집주인은 난데, 내가 저런 장난질에 겁먹으면 안 될 일인 것 같았다.

갑자기 화가 났다. 이런. 아 별 희한한 경우가 다 있네.

마음을 다잡고 벌떡 일어났다.

그런데 일어나자마자 심장이 격하게 큰 소리로 고동치고 있었다.

겁나고 공포에 질린 것이 맞는 것 같았다.

말로는 아니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얼굴이 긴장감으로 빳빳하게 굳어졌다.


그걸 꺼내야 할까. 싶었다.

이런 경우에, 확실하게 위압감을 주려면 반짝 빛나는 골프채를 꺼내야 그럴싸해 보일 텐데.

골프를 치지 않으니 골프채가 있을 리가 없다.

신발장에 아주 오래된 거미줄 먹은 야구 방망이가 있었던 것 같던데. 찾아보니 없다.

혹시나 모르니, 두 손에 목장갑을 챙겨 끼고는 두꺼운 배낭 가방을 꺼내 가슴에 둘렀다.

머리에는 비니를 눌러썼다.

창밖의 외부인이 갑자기 도구로 창을 부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과 자꾸만 뒷걸음치려는 다리를 애써 끌어당기며 창가로 다가갔다.

도대체 누구야!

말은 호기롭게 외쳤지만, 뒷힘은 없었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창문에 다가서는 그 순간까지도 덜커덕 긁적긁적 소리는 계속되었다.

도대체 어떤 인간이?

나는 서랍 위에 얹어 두었던 스마트폰을 챙겨 여차하면 경찰에 전화를 걸 준비를 했다.


후우~~

깊게 단전 호흡하고 바깥 동태를 살폈다.




창에 비친 그림자를 가만, 유심히 보니 그것은 사람의 그림자는 아니었다.

개나 고양이 같았다.

적이 안심이 되었다. 사람이었으면 어쩔뻔했나.


안도의 한숨을 쉬며,

불투명한 안쪽 창을 여는 순간

그와 눈이 딱 마주쳤다.

토끼였다.

토끼는 시뻘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토끼?

토끼!

웬 토끼?

창틀을 긁적인 것이 토끼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콧방울을 실룩거리며 입을 오물거리며 귀를 쫑긋 세운 토끼.

귀엽다는 느낌과 애처롭다는 느낌이 동시에 왔다.

땡그란 빨간 눈은 자기를 빨리 실내로 들여보내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거 어쩌나?

내 인생에 동물, 반려 동물이라니.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으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이 토끼를 집에 들이는 순간, 이 녀석이 앞으로 나의 삶의 라이프 파트너가 될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들었다.

강아지나 고양이도 아니고, 토끼를 집에서 어떻게 키운담? 사료값, 병원 치료비, 화장실 사용, 털관리 미용 등 다양한 항목의 유지관리비용을 어떻게 감당하지? 내가 회사 출근한 동안 온 집안을 헤집으며 아무 곳이나 화장실을 만들어 놓겠지. 나는 매일 퇴근해서 토끼 뒤치다꺼리 하면서 앞으로 10년 세월을 견딜 수 있을까? 10년이 지난 후에는 이 녀석도 하늘로 떠나겠지. 그러면 나는 또 반려자를 잃은 듯한 심정으로 반려동물 장례식장에서 눈물을 흘리겠지. 하늘나라로 떠난 후, 3년의 시간 동안 매일 이 토끼를 그리워하겠지. 몇 년이 지난 후 결국은 견딜 수 없는 허전한 마음으로 또 다른 비슷한 생김의 토끼를 입양하려 하겠지.


대략 1분 사이에 여러 가지 미래예측 시나리오를 머릿속에 구상하고 펼치고 허물고 하는 사이,

토끼는 조금 전 보다 더욱 애처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앞 발로 여전히 창틀을 긁적이며 예의 땡그란 빨간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하. 이거 어떻게 하지.

고민스러운 마음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구청 동물복지과에 전화하면 뭔가 해결 방법이 있지 않을까?

동물복지과에서 우리 집으로 출동하여 이 토끼를 수거해가게 하면 되지 않을까?

갑자기 전구에 불빛이 확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집토끼인지 야생토끼인지 모르겠지만 주인 없는 토끼가 나타나서 집으로 들어오려고 하고 있다.

창문을 긁고 있는데, 창문이 파손될 것 같다. 이대로 두면 온 동네 집들을 찾아다니며 창문을 훼손시키고 음식쓰레기 박스를 헤집어놓을 것 같다. 어린아이들을 물거나 할퀼 수도 있다. 주민들에게 전염병을 옮길 수도 있다. 구청에서 해결해줘야 할 것 같다. 등등. 대략 내가 할 말의 내용까지 머릿속으로 골라 두었다.

이러면, 상황은 말끔하게 종료되겠는데.




그런데, 그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대략 토끼로부터 4~5미터 거리 떨어진 아래쪽 수풀에서 몸을 낮춰 웅크리고 있는 고양이였다. 고양이는 몸을 바짝 낮추어 튀어 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고. 눈빛은 날카로웠다. 맹수 특유의 본능적인 시선이었다. 날카롭게 노려보는 고양이는 정확히 토끼를 타깃으로 하고 있었다. 고양이 이빨과 발톱이 아침 햇빛을 받아 번득였다. 평소에는 종종걸음으로 숨어 들어가는 고양이 뒤태가 귀엽다고 느껴졌는데. 지금은 고양이야말로 공격성 강한 맹수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꼬리가 곤두서있었고, 꼬리뿐만 아니라 온몸의 털이 출격 준비로 곤두서있는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총알처럼 탕 튀어나오듯, 뛰쳐오를 자세였다.


나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창문을 열고 토끼를 감싸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