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했던 질문이었다.
"예상은 했었다.
결국 질문이 나왔다.
그러면 꿈에 개입을 하십니까?
본인이 꿈을 꾸고 있을 때, 꿈꾼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꿈의 내용이나 꿈속의 인물들을 본인의 의도에 따라 조작하기도 하는지요?
질문은 온라인 화상 영어 수업에서 나왔다.
강사가 업무 이외에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느냐고 묻길래, 꿈 저널링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자 바로 나온 물음이 꿈을 꾸면서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꿈에 개입하기도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질문의 핵심은 내가 꿈속에서 꿈꾼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에 대한 궁금함이라기보다, 꿈에서 꿈의 내용이나 상황을 내가 의도대로 조작하거나 바꾸기도 하는지가 궁금했던 것이다.
꿈을 많이 꾼다고 하면 대부분 사람들이 루시드 드림, 자각몽을 떠올린다.
그리고 내게 그것에 대한 경험을 물어본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루시드 드림, 자각몽에 대해 그다지 깊게 생각해 보거나 경험해 보려고 노력한 적이 없어서 딱히 기대하는 답변을 줄만한 것은 없다. 다만,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의 태도에서 나는 공통된 무엇인가를 감지하게 된다. 사람들이 루시드 드림, 자각몽에 대한 호기심과 일종의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하긴, 루시드 드림 또는 자각몽. 그런 단어가 주는 뉘앙스 자체가 알 수 없는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기는 하다.
루시드 드림이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느낌은 보랏빛 색상이었다. 진한 보라가 아니라 연푸른 보랏빛이었다. 왜 그런 색상이 머리에서 떠올랐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몽환적이고 불가해한 느낌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어쩌면 꿈 자체가 보랏빛을 연상시켰는지도 모르겠다. 보랏빛은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간혹 알 수 없을 정도로 신비하면서 불안을 돋우면서 매혹하는 기분을 갖게 만든다.
어떤 소설가 중에 루시드 드림, 자각몽을 한다는 분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심지어 의도적으로, 자각몽을 통해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꿈에서 소환하여 만나기까지 했다. 꿈에서 임종하신 분의 영혼을 불러낸 것이다. 인터뷰 기사를 읽고 매우 놀랐다. 나름 이유가 있었겠지만 나라면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흥미로운 이야기였지만 그 인터뷰 내용에서 느낀 전반적인 인상은 대체로 다소 어두운 그레이 색상이었다. 순전히 나의 주관적인 느낌이겠지만 작가의 얼굴 표정도 다소 어두워 보였다. 기사를 읽고 루시드 드림, 자각몽이 그것을 시도하는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보다 부정적인 결과를 더 많이 초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루시드 드림, 자각몽에 관심을 지대하게 가지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현실에 대한 불만족인 것 같다. 흔히 꿈을 제어할 수 있다면 꿈에서 내가 현실에서 못 이룬 것들을 다해봐야지 대략 그런 생각들인 것 같다. 현실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만날 수 없는 초월적인 재력과 가문, 에티켓을 갖춘 아름다운 외모의 웹툰 남주를 불러낸다든가 또는 아무리 써도 마르지 않는 재물과 숫자를 정확히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시종과 집사를 거느린 재벌가의 후손으로 살아 본다든가 등등.
나는 루시드 드림 또는 자각몽을 꾼 적은 없다. 아니 정정하자. 내가 의도적으로 개입한 적은 없다. 다만, 내가 꿈에서 이것이 혹시 꿈이 아닐까라고 의심을 품은 적은 있다. 매번 내가 그런 의심을 품고 이것이 꿈임을 자각하는 순간, 눈앞의 광경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했다. 창문을 열면 바로 바닷가 모래사장이, 화이트 그레이 색상의 부드러운 모래가 끝없이 깔려있었다. 그 너머에 넘실거리는 물결이 있었다. 나는 통창으로 조성된 해변가 스튜디오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날씨는 곧 비라도 내릴 듯 구름이 낮게 깔렸고 꾸물거리고 있었다. 구름은 점차 화이트에서 푸른색이 조금 섞인 회색빛으로 색상을 바꾸고 있었다. 방금 우려낸 커피물 향이 코로 들어오고 뇌가 말랑해지는 기분을 느낀다. 아마, 커피 분자가 공기 중에 확산하여 나의 코를 통해 두뇌에 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른하게 창밖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런 곳에 세컨드 하우스가 있었다니. 분명 이곳은 나의 세컨드 하우스임에 틀림없지만. 내가 그동안 무슨 재주로 드넓은 바다를 마주한 고운 모래사장 바로 코 앞에 집을 가지고 있을까. 그런 의심이 명치끝에서부터 올라오기 시작했고 머릿속 전체를 가득 채웠다. 이것은 꿈이나 환상 같은데? 점차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어 갔다. 그러자 창문틀이 흔들거렸다. 이어서 유리창이 흐물거렸다. 모래사장과 바다가 흩어지기 시작했다.
대부분 내가 이것은 꿈이 아닐까 의심을 갖는 순간, 눈앞의 현실(꿈에서의 현실)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내가 꿈에 개입하거나 조작할, 제어할 틈이 없었다.
현재로서는 루시드 드림, 자각몽을 시도할 생각은 없다. 물론, 아주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잘 모르는 영역이니 궁금하기는 하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루시드 드림, 자각몽에 관심을 가지고 집착하는 이유가 석연찮다. 대개의 경우 현실이 고통스럽고 괴롭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좌절하고 괴로워하기 때문에 현실 도피의 탈출구로서 자꾸 떠올려 보는 것 아닌가 싶다. 그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루시드 드림, 자각몽을 의도적으로 경험하려고 한다면 과연 행복해질까?
루시드 드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자마자 나는 루시드 드림, 자각몽을 시도하고 여기에 의존하다 보면 위험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대로 만들 수 있고 통제하고 사람들마저 조종할 수 있는 꿈의 세계를 사람들은 꿈꾸는 것 같은데. 내 관점으로는 상당히 위험해 보인다. 아마 일정 수준의 후유증을 감내해야 할 것 같다. 현실이 내 뜻대로 만들어지지 않으니 꿈에서라도 그렇게 해봐야겠다는 의도라면 더욱 시도하지 않는 것이 건강에 이로울 듯하다. 이 말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실제로 루시드 드림을 계획하여 체험한 이의 체험담을 읽어보니 자각몽을 의도하여 경험하면 할수록 몸에 이상이 생기는 것 또한 동반하여 겪고 있었다. 또 한편으로는, 만약 내가 루시드 드림, 자각몽으로 나의 꿈을 만들어내고 통제하고 조작해 낸다면 나는 아마 더 이상 꿈 저널링을 쓰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의식적으로 만들어 낸 꿈은 아무래도 부자연스러울 것만 같다. 그리고 자각몽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정신적 또는 신체적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 같다. 꿈은 그저 자연스럽게 흘러나와서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