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브 터널로 출근하기
결국 이런 날이 오고야 말았다.
월요일 출근길, 회사 건물 정문 입구였다.
평소 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
언제나 월요일은 빽빽하게 붐비고, 막히고, 시달린다.
그런 파김치 상태가 싫어서 거의 새벽에 집을 나선다.
그런데 이른 아침에 도착한 회사에 입구 출입문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낯선 구조물이 보였다.
터널이었다.
아니 그보다는 워터파크에 가면 매트를 깔고 미끄러져 내려가는 튜브 슬라이드(Tube Slide)에 가까웠다.
여러 가닥의 터널, 튜브 슬라이드가 빙글 뱅글 돌아 돌아 꼬여있었다.
이건 뭐지?
그런 생각에 당황, 당혹스러웠다.
주말 사이, 회사 입구에 새로운 형태의 출입문이 조성되어 있었다.
믿을 수 없었지만 그랬다. 워터파크 튜브 슬라이드 방식의 출입문이라...
하지만 회사는 놀이공원이 아니지 않은가. 나 역시 물놀이를 즐기러 온 고객은 아니니까.
어이가 없었지만 능히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나는 추리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추측하기로 회사는 습관적으로, 특히 월요일 아침마다 상습적으로 지각하는 많은 직원들에 대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전 세계 어느 직장이나 앓고 있는 대표적인 월요병 증상일 것이다. 덧붙여 회사는 시내 대중교통 노선으로부터 한참 멀리 떨어진 외곽에 있었다. 회사로의 출근은 자차가 없는 이들에게는 고난스러운 여정이었다. 그래서 이런 소문도 떠돌았다. 사실인지는 미심쩍었지만 어떤 직원은 자신의 출퇴근 패스 카드를 회사 인근 오피스텔에 살고 있는 다른 직원에게 맡겨놓는다는 그런 믿기 어려운 이야기까지 나돌았다. 설마?
출근에 대한 여러 가지 이슈 해결을 위해 회사가 특단의 대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소문은 벌써부터 무성했다. 그런데 정말 이런 방식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회사 출입문을 뱀처럼 똬리를 틀어낸 터널로 만들어 버리다니. 아마 누군가 경영진 회의에서 이런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안했을 것이다. 그런데, 충분히 황당한 아이디어임에도 그것을 덜컥 받아들여 빠르게 도입한 경영진의 신속한 결단에 경탄할 따름이다. 입이 떡 벌어졌다. 토, 일요일 단 이틀 사이에 이렇게 튼튼한 구조물을 만들어내는 우리 시대의 추월을 불허하는 기술력과 속도에 감탄했다.
그나저나 이 터널을 어떻게 들어간담?
걸어서 들어가기에는 터널 입구가 좁아 보였다. 가만히 살펴보니 터널 입구에 간이 표지판이 있었고 그 옆에 미끄럼 매트가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표지판을 읽어 보았다. 깨알 같은 글씨로 안내가 표기되어 있었다. 4월 1일부로 회사 출근 방식을 이와 같이 변경한다는 것이었다. 미끄럼 매트를 터널 입구에 놓고 그 위에 몸을 하늘을 보게 누은 다음, 등으로 밀고 발을 굴려서 매트를 타고 내려오라는 이용 방법 안내였다. 그러면 아무리 늦어도 5분 내로 회사 로비에 도착할 것이라는 고지였다. 그런데, 그 아래 더 좁쌀만 한 글씨로 이렇게 쓰여있었다. 터널 입구에 몸을 실은 것만으로는 출근으로 인정이 안된다. 오직 터널 끝단에서 매트가 빠져나와 직원의 발이 로비 바닥에 착지하였을 때 출근으로 시스템에 자동 기록된다. 아마도 착지하는 지점에 탐지 깔판이 마련된 것 같았다.
안내문을 찬찬히 모두 읽고, 다시 처음부터 읽고, 또 읽고. 아마 네 번 정도 다시 읽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좀 망설였다. 일단 안전 문제였다. 매트에 몸을 누이고 터널로 들어가면 미끄러지면서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전체적인 튜브의 기울기로 봤을 때 시작 지점은 다소 평탄해 보이지만 중간부터는 급격하게 아래로 급강하하게 설계되어 있는 것 같았다. 낙하의 충격을 감당할 수 있을까? 중간에 매트가 터널 내부의 이음새와 얽히면서 찢어지거나 방향이 어긋나는 사고가 일어난다면? 내가 탈출을 못하는 사이에 내 뒤에 따라오던 다른 직원이 멈춰있는 내 몸과 매트로 돌진해 온다면? 있을 수 있는 모든 다각도로 불안정한 시나리오들이 휙휙 머리를 스쳐갔다. 마지막에는 이 모든 것이 업무에 지친 직원들을 위한 회사 측의 특별 깜짝 이벤트라거나 혹은 회사와 어떤 방송사가 합작하여 마련한, 평소 있을 수 없는 상황을 던져주고 사람들의 놀라는 반응을 관찰해 보는 예능 프로그램은 아닐까 정도까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때 마침 직원들이 한 명, 두 명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약간 멀찍이 나무로 가려진 벤치 뒤에 서서 그들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40대 초반 남자 직원 한 명은 안내문의 지시를 쓱 읽어보고는 스스럼없이 매트를 하나 집어 들더니, 바로 터널 입구에서 본인의 백팩을 가슴에 껴앉고 몸을 누인 다음 발을 굴렀다. 마술처럼 뿅 하고 그는 터널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또 다른 30대 중반 여자 직원이 나타났고 역시 안내문을 한번 훑더니 약간 갸우뚱 멈칫했지만 역시 앞선 남자 직원처럼, 그대로 매트를 타고 터널로 빨려 들어갔다. 한 명 두 명씩 그렇게 들어가고 있었고 사람들은 줄지어 서고 있었다. 마치 터널이 입을 벌리고 사람들을 하나씩 먹어치우는 듯해 보였다. 꾸역꾸역 소화를 시키는 동물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