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2)

나도 튜브 입구로 들어가다.

by 지훈

나도 튜브 입구로 들어갔다. 겁이 났고 주저 주저 했지만 내 뒤에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신경 쓰여서 더 이상 멈칫거릴 수는 없었다. 발을 굴렸다. 몸이 훅하고 밀려서 아래로 떨어져 미끄러져 내려갔다. 거대한 동물의 목구멍을 넘어 식도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원체 스릴이나 모험과는 거리가 멀리 살아왔기에 쑤욱 급강하할 때는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손가락, 발가락 끝까지 온몸의 체모가 뾰족하게 곤두섰던 것 같다. 눈을 질끈 감고 있었기에 터널의 내부를 기억할 수 없었다. 아니 어차피 터널 내부는 불빛 없이 어두웠기 때문에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사실 그것도 정확하지는 않다. 기억해 보면 터널 내부를 야광 페인트로 도색한 것 같았다. 약간 노란색 빛이 감돌았던 것 같다. 땅바닥에 착지하기까지는 채 5분이 안 걸렸던 것 같다.





정확히 회사 로비로 떨어졌다. 착지할 때 긴장해서 몸에 힘을 잔뜩 주었던 것 같다. 발목이 삐끗했다. 시큰거렸다. 옷은 땀에 젖어있었고, 거친 한숨이 터져 나왔다. 더불어 온몸의 기운이 쭉 빠졌다. 한 고비 넘겼다는 생각과 앞으로 매일 아침마다 이 짓을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치솟으면서 감정은 분노로 변했다.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는 터무니없는 규칙에 어쩔 수 없이 순응하면서 회사를 다녀야 하나.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솥단지처럼 부글부글 끌어 올랐다. 그때 갑작스러운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었다. 와아아아!!! 누가 내 양손을 잡아 일으켜 주었고 어깨를 토닥이며 격려해 주었다. HR팀 팀장님이었다. 직원들이 로비에 가득 모여있었고, 터널 끝에서 로비로 속속 착지하는 직원들에게 박수와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어리둥절했다. 다른 직원들이 이미 이 시스템에 익숙해진 것일까? 어째 다들 애사심과 새로운 조치에 대한 수용성이 나 보다 월등한 것 같다. 내가 열등한 것일까? 나는 아직 이 시스템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의문스러웠다.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만든 터널형 튜브 슬라이드. 굳이 이런 출근 통제 장치가 필요할까? 이상하게도 나처럼 회의적인 시각을 갖는 사람은 한 명도 없는 것 같았다. 다들 이미 이 시스템에 빠른 속도로 적응해 버린 것 같았다. 물론 잘 알고 있다. 우리 시대는 숙고나 숙려, 차분한 사유가 더 이상 허용되지 않으니까. 빛의 속도로 일을 처리해야 하는, 때론 빛 보다 좀 더 빠른 속도로 뉴 메커니즘을 도입하고 실행해야 하니까. 머뭇거리고 주저할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으니까.




로비 한쪽 벽면에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었다. 거기에 실시간으로 터널 슬라이드를 타고 미끄러져 들어오는 직원들이 모습이 중계되고 있었다. 이미 회사 로비로 도착한 수십여 명의 직원들은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었다. 격자형 스크린에서는 터널 입구에 발을 걸치는 직원들과 이미 터널 속에서 슬라이드 매트를 타고 미끄러져 들어오는 직원들의 모습이 다각도로 보이고 있었다. 누가 큰 소리로 슬라이드 입구에서 로비 착지까지 최단 시간으로 도착하는 직원에게는 포상이 주어진다고 말했다. 상금 운운하는 말은 순식간에 사람들 틈으로 퍼져나갔고 웅성 웅성한 말소리가 점차 고조되었다. 직원들은 흥분했다. 손뼉을 치고 우우우우 응원하며 소리를 질렀다. 포상금은 사람들을 흥분시킨다. 하지만 나는 의심했다. HR팀 관계자들은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터널 입구 안내 고지문 어디에도 그와 같은 문구는 단 한 구절도 없었다.




그런데 문제가 터졌다. 사람들이 저거 저거 어째하며 웅성거렸다. 화면에는 짧은 스포츠머리 거구의 중년 남자 직원이 자신의 풍성한 살집을 이리저리 구겨 넣으며 터널 입구로 진입하고 있었다. 아니 진입에 애를 먹고 있었다. 누군가 소리쳤다. 저 사람 120 kg이 넘는데! 거구의 남자는 이마에 구슬땀을 흘리며 자신의 몸을 구깃 구깃 통로로 밀어 넣었다. 남자의 몸은 간신히 통로 속으로 사라졌다. 사람들의 표정은 조마조마했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쿠당탕당 소리가 났다. 뭔가 거대한 물체가 터널 통로에 끼인 것 같았다. 낀 물체는 다름 아닌 그 거구의 남자 직원이었다. 그다음 차례로 터널 입구로 들어가려던 호리 한 체격의 여자 직원이 막 발을 넣고 누으려다가 잠시 멈췄다.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그녀가 남자 직원에 뒤이어 터널을 타고 내려갔다면 어쩔 뻔했을까? 분명 둘의 몸이 부딪치면서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대형 사고로 이어졌을 것이다. 화면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저거 어떡해~~ 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사람들의 시선은 여전히 화면으로 향해있었다. 호리 한 체격의 여자 직원은 이상한 상황을 감지하고 터널에 머리를 집어넣고 뭐라고 뭐라고 외치고 있었다. 스크린에서는 들리지 않았지만 아마 그 거구의 남자 직원 상태를 확인하려는 것 같았다. 나는 다들 저렇게 스크린을 보고 어떡하냐는 소리만 반복하면서 발만 동동 구를 것이 아니라 119에 신고를 해야 하는 것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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