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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험제이 Mar 19. 2019

100가지 꿈에 도전한
가슴 뛰는 청년의 이야기

Episode 6. 나에게 두려움이란?

나는 수상 인명구조원이 된 이후에 또 다른 두려움도 내가 포기만 하지 않으면 극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새로운 두려움을 찾아 도전을 시작했다. 


나는 지질한 학창 시절을 보내서인지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어려워했고 사람들이 많은 곳을 기피하곤 했다. 행여나 사람들에게 주목받으면 머리가 새하얘지고 온 몸이 벌벌 떨렸다.


멋진 수상인명구조원이 되었지만 성격은 여전히 우유부단했고 내성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대학교 수업에서도 늘 소극적이었다. 수업만 들어가면 맨 뒤쪽 사이드 쪽에 앉았고 무언가 행사를 하면 뒤에서 병풍처럼 보조만 하는 역할을 해왔다. 나는 동기들에게 나서는 것을 싫어한다고 말했지만 그건 나만이 가지고 있던 열등감이었고 사실은 리더십 있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동기들이 부러웠다. 나도 저렇게 리더십 있고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을 할 줄 아는 주목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이러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육군 장교에 지원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1년을 준비해서 필기, 실기시험을 우수한 성적으로 1차 통과를 했지만  최종면접에서도 나는 불안한 모습을 보였고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횡설수설했다. 그리고 떨어졌다.


그러나  포기만 하지 않으면 이룰 수 있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기에 다시 1년간 준비를 했다. 이번에  떨어지면 다시 지원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온 집중을 다해 준비했고 우여곡절 끝에 육군 장교로 입대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장교로 임관 후 자대 배치를 받았다. 그곳에서 나의 첫 소대원들을 만났다. 소대원들도 궁금했는지 다들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소대원들 앞에서 자기소개를 했는데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나름 담담하게 자신감 있게 말하려고 했지만 목소리의 떨림은 소대원들도 알았을 것이다. 내가 간부인데 병사들 앞에서 목소리를 떨다니! 스스로 너무 부끄러웠고 원망스러웠다. 나는 여전히 사람들 앞에서 겁쟁이였다.


이후로도 초임 소대장으로서 잦은 실수와  내성적이고 우유부단한 성격에 하루하루 혼나는 것이 일상이었고 과도한 업무로 하루에 2,3시간밖에 잠을 못 자니 날이 가면 갈수록 신경이 예민해졌있었다. 나는 장교로 입대한 것을 진심으로 후회하기 시작했다. 소대원 앞에서 말하는 것도 겁나고, 능동적으로 지휘하는 것이 두렵기 시작했다. 또한 내가 장교로서 모든 책임을 져야 하고 통제해야 했기에 하루하루 그 부담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힘들었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무기력해졌고 소대원들에게도 늘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에 나를 제대로 따르는 소대원들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상급자한테 최지훈 소위는 병사랑 같이 있으면 누가 장교인지 알아보기 힘들다는 말까지 들었다. 

아마 왜소한 체격과 앳된 얼굴, 늘  수줍어하고 자신감 없어하는 표정이 그런 인상을 심어주었던 것 같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망치로 쾅하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굉장한 충격에 빠졌었다. 하루하루 너무 괴롭고 나날들이었다. 다시 시간을 돌릴 수 있다는 병사로 입대하고 싶었다.

나는 밤 10시가 넘어서 퇴근하는 것이 일상이었고 숙소에 들어가서도 불도 안 킨 채 조용히 밤하늘의 달을 보며 왜 장교로 지원했을 때 한숨만 쉬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소대원 부모님께 전화가 왔다. 아들이 잘 지내는지  하루하루 보고 싶고 걱정된 마음에 전화를 하면 안 되지만 소대장님께 전화를 했다고 하셨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순간 우리 부모님 생각이 나서 그 소대원이 군 생활하며 활짝 웃는 사진을 그 부모님께 보내드렸다. 그랬더니 얼마나 고마워하시는지 너무 행복하다고 말씀하시고 수차례 감사하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 사실을 그 소대원에게 말해주었더니 사진 보내주셔서 감사하다고 정말 감사하고 말하는 것이다.  그 이후로 그 소대원은 나만 보면 활 웃으며 반가워했고 나를 잘 따라주었다. 그리고 본인의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나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얼떨떨했다.


예전에도 소대원들을 내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소대원들이 짜장면, 치킨, 피자에 환장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많이 사주기도 했지만 그때만 좋아했을 뿐 나를 진심으로 따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진 한 장 찍어서 보내드렸을 뿐인데 부모님과 이 소대원에게는 이 사진 한 장에 이렇게 행복해하는구나! 나는 문득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에 대해서 굉장히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건 그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작은 정성만 보태서 조금만 신경 쓰더라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다면 소대원이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여자 친구 혹은 가족이었다. 그때부터 여자 친구 있는 소대원들에게 수시로 전화를 시켜주었다. 가족분들에게는 ‘밴드’라는 그룹을 통해서 매일 수십 장씩 사진을 찍었고 생동감 있는 영상도 틈틈이 찍어서 보냈다. 나도 업무에만 몰두하고 싶고 휴식시간에는 쉬고 싶었지만 수시로 아이들 훈련, 밥 먹고, 휴식, 자는 것 까지 찍어서 부모님들께 보내드렸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니 부모님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는 소대장이 될 수 있었고 소대원들이 나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것을 눈빛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예전에는 10가지 업무가 있으면 10가지를 나 혼자 다해야 했다. 그러나 소대원들의 마음을 얻은 후에는 10가지 업무 중  8가지 업무는 소대원들이 알아서 도와주었다. 

나에게 찾아와 고민 상담을 하는 소대원들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나 또한 한 명 한 명 친형처럼 진심으로 대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소통이 많아지며 대화를 많이 하다 보니 매일마다 100명이 넘는 소대원들 앞에서도 전혀 떨리지 않게 되었다. 나는 더 나아가 우리 소대가 대한민국 최고의 소대가 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한 번은 사단장, 연대장부터 고위급 간부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각 중대별로 장기자랑을 하는데 우리 중대에서 준비한 장기자랑이 분위기가 썰렁해진 것이다. 그렇게 장기자랑을 마무리하려는데 다시 자기 자랑을 하라는 상급자의 지시가 내려왔다. 그 현장에서 누군가는 해야 하는데 아무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순간 몇 초간 정적이 흐르고 다들 당황하고 있었다. 

이 상태에서 5초만 더 흐르면 우리 중대가 타 중대보다 못하다는 이야기를 들을까 봐  내가 갑자기 손들고 노래 한 곡 부르겠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소대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책임감을 가지게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사단장, 연대장 포함 100명이 넘는 간부들 앞에서  싸이의 챔피언을 불렀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춤까지 추었다. 나의 노래와 춤을 본 반응은 모든 간부들이 박장대소했다. 비록 음치에 몸치지만 나의 하고자 하는 열정에 다들 감탄했었던 것 같다. 


평소에 조용하고 존재감 없던 내가 그렇게 춤추며 노래 부르니 다들 놀랬을 것이다. 노래가 끝나 마자 엄청난 박수갈채가 쏟아져왔고  우리 중대 사기가 엄청나게 올라갔다. 

사단장님께서 나의 그런 에너지 넘치는 모습이 마음에 드셨는지 정말 멋진 소대장이라고 하셨고 다른 상급자 분들도 정말 멋있었다고 진심을 담아 이야기해주었다. 

다들 너의 소대원들은 정말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그 분위기에서 나에게 건배제의까지 해보라고 하셨다.

나는 사단장 , 연대장  바로 옆 자리에 앉았고   내친김에 건배제의까지  하게 되었다. 

이 분위기는 대기업 회장님, 부회장님 옆에 일개 사원이 앉아있고 그 상태에서 건배 제안까지 하는 것과 다른 게 없었기에 정말 군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전역하는 그날지 3년 4개월간 단 하루도 편한 날 없이 치열하게 군생활하다가 전역을 했고 여전히 내 가슴속에는 우리 소대가 대한민국 최고의 소대로 남아있다.


입대했을 때의 나는 병사들 앞에서 말도 제대로 못 했던 장교였지만

전역할 때 부대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정말 과분한 사랑을 받으며 당당히 전역을 했다.   


전역 이후의 나는 더 이상 아웃사이더가 아니었고 어느 자리를 가도 분위기를 주도할 줄 아는 리더십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나는 수상인명구조원 강사, 스키강사, 육군 장교에 도전을 하면서 내가 회피하고 싶었던 두려움과 마주하는 순간  내 삶이 한 단계 성장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두려움을 따라 본격적으로 도전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두려움이란 내 인생의 나침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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