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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험제이 Mar 23. 2019

100가지 꿈에 도전한
가슴 뛰는 청년의 이야기

에피소드 20.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의 나를 인정하다  

나는 3개월간 나무 농장의 일이 끝나고 다양한 일을 시작했다.


처음으로 일했던 공사장 타일 작업이었다.  호주는 굉장히 합리적이고 젠틀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일한 한인 타일업체는 사실 한국 시스템과 다를 것이 없었다. 다들 좋은 사람들이지만 일적인 면에서 한인 잡을 다들 비추천했는데 사실 영어를 잘못했고 자신감이 없어서 한인 타일 잡을 선택하게 되었다.

아침 7시부터 일을 시작해서 저녁 5시까지 일을 했다. 

다른 곳은 하루에 적어도 200불은 준다고 하는데 나는 호주에 온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130불도 크게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호주의 물가를 미쳐 고려하지 못했다.


호주는 한번 밥을 사 먹어도 최소 15불이었기 때문이다. 

굉장히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시스템을 갖춘 나라이기 때문에 일적으로 대우도 좋고 깔끔하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간 한인 타일 잡은 직원들의 압박이 보통이 아니었다. 

더 빨리 해라, 이렇게 하면 망한다, 내 때는 이렇게 했다 등 전형적으로 우리나라에 없어져야 할 ‘빨리’의 문화가 있었다. 호주에서 한국인이 많이 있기 때문에 안녕하세요 라는 말을 기본적으로 알고 그다음은 빨리라는 말을 알고 있었다. 한국의 그런 문화가 싫어서 호주에 왔더니 여기서도 이렇게 일하는 나 자신이 싫어졌다.  게다가  일당은 원래 바로 지금 해줘야 하는데 일주일 넘게 못 받았고 시간당 일을 하기에 5시 이후 2시간 일을 더 하자고 해서 기쁜 마음으로 했지만 일당제라서 130불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잡을 구하기 시작했고  이번에는 한국인이 없는 곳에 들어가기로 했다. 

호주 사람들만 있는 오지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내가 레스토랑에서 하는 업무는 주방에서  설거지하는 것이었다. 그곳에는 7명의 셰프들이 1초도 쉬지 않고 일하고 있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는데 알고 보니 20살부터 제일 나이 많은 셰프가 24이었다. 처음에 내가 설거지를 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왜냐면 나는 사범대 체육교육과를 졸업했고 100명이 넘는 병사들을 통솔했던 장교 출신에 수많은 도전을 해왔으니 나 스스로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타이틀을 가지고 있던 내가 고무장갑을 끼고 그릇을 닦고 음식물 쓰레기를 비운다는 것이 처음에 낯설었다. 처음에 나는 미숙했기 때문에 셰프들의 지적을 많이 받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셰프들은 감정이 섞여있지 않았고 있는 그대로 나의 실수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는데 나는 바보같이 잔소리처럼 들었으니 기분이 안 좋았던 것이다


자격지심으로 인종 차별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표정이 안 좋다 보니 셰프들과도 묘한 냉전 분위기가 흘렀다. 일하는 나는 당연히 스트레스받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직도 내가 과거의 영광에 미련이 남아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셰프들이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사장과 정말 친구처럼 어깨동무를 먼저 하면서 친하게 지내고 컴플레인이나 부족한 점이 있으면 서스름 없이 불편한 것을 이야기했다. 그 광경을 보고 정말 놀랬다. 보통 한국에서는 직원이 사장한테 말을 잘 못하고 사장 비위 맞추기 바쁜데, 본인의 생각을 이렇게 자유롭게 말하다니 역시 선진국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셰프들한테 어떻게 말할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나이가 뭐가 중요하냐고 물어본다. 나는 21살의 청년이 아닌 셰프로서 당당히 요구하는 거라고 했다. 그렇게 사장은 셰프들의 말을 수용함으로써 본인이 몰랐던 사실들을 알고 더욱 개선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의 과거에 무엇을 했던, 나이가 몇 살이던 우리는 현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비서한테 늘 보고 받고 보고 체계를 거쳐서 올라가는데 여긴 말단 직원이 그냥 사장한테 편하게 이야기하는구나. 함께 도시락 먹고 함께 청소도 하고 그런 모습이 정말 귀감이 되었다. 


그런데 나는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권위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니 셰프들과 소통을 하지 않았던 내가 부끄러웠다. 그 이후로 나는 현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나는 마이너스의 빚이 있고 가진 것 하나 없는 29살 청년이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인정하니 셰프들이 지적을 해도 다시 시작한다는 마인 드였기 때문에 웃으면서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었고 궁금한 점은 먼저 적극적으로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니 오히려 셰프들이 나를 더 잘 챙겨주었고 실수해도 웃어넘기는 것이었다. 나는 더 이상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고 즐겁게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몇 개월 설거지를 해보니 내 삶에 전혀 도움이 안 될 것 같았지만 엄청난 도움이 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요리를 배우려면 설거지부터 해야 한다는 말에 전혀 공감을 못했지만 이제야  이해가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수많은 그릇을 닦으며 주로 사람들이 어느 시간대에 어떤 메뉴를 많이 시키는 , 어떤 그릇이 많이 나가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떤 음식물을 가장 많이 남기는지 어떤 소스를 선호하는지 메뉴의 흐름을 알 수 있었고 어느 시간에 셰프들이 바쁘고 어느 부분에서 내가 서포트를 해줘야 하는지 보이는 것이다. 

이렇게 반복하다 보니 무슨 요일에는 몇 그릇 정도 나가는지 몇 시에 마감이 될 건지 예상할 수 있었다. 또한 청소부터 식기류를 정리하고 식자재 보관까지 관리하면서 이렇게 위생 관리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설거지하는 내가 셰프가 된 마냥 레스토랑 운영의 전체 흐름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느낀 점들을 나도 사장한테 편하게 이야기하니 말해줘서 정말 고맙다며 앞으로 운영에 반영하겠다고 했다. 셰프가 이렇게 말단 직원까지도 소통을 잘하니 서호주 3대 레스토랑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설거지하는 아르바이트생인데도 불구하고 레스토랑에 대한 사명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굳이 일 벌일 것 같은 것도 스스럼없이 셰프에게 말해서 이런 점은 보완해야겠다고 이야기했다. 내가 손이 더 바빠져도 사명감이 있었기 때문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실로 스스로도 놀라운 체험이었다. 그동안 내가 일을 하며 보람을 느낀 적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식당 설거지하면서 이렇게 많은 것들 배우게 되다니. 


이렇게 내가 가진 것들을 비우고 새롭게 배운다는 마인드를 가지니 라이프 스타일이 변하기 시작했다. 이래서 밑바닥부터 일해 보라는 말이 생겼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때 네가 뭔데 나한테 그런 말을 하지라는 생각을 가졌던 내가 부끄러웠다. 


그제야 나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의 나를 인정했으며, 

마음을 비우고 나서야 나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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