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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험제이 Mar 23. 2019

100가지 꿈에 도전한
가슴 뛰는 청년의 이야기

에피소드 22. 11개월간 사색을 통해 깨달은 것

내 인생에서 이렇게 사색을 길게 해 본 적이 있었던가? 


아침 6시 30분부터 저녁까지 4시 30분까지 하루에 10시간씩 나만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도 무려 11개월의 긴 사색이었다. 바로 소시지 공장에서 말이다.

비트코인으로 돈 한 푼도 남기지 못하고 다 잃은 나는 다시 1년 전 상황을 똑같이 마주했야 했다. 나는 호주에 와서 1년간 200만 원짜리 중고차를 몰면서 훗날 모험가의 꿈을 위해 잠도 줄이며 2 잡을 했다. 아침 7시 30분에 일을 시작해서 저녁은 차에서 빵을 먹으며 저녁에 청소를 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면 10시, 씻고 바로 자고 다시 7시 30분에 일을 시작하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집에 도착하면 피곤해서 씻지도 않고 침대에 누워 잠든 적도 많았다.


그렇게 1년을 일했으나 이번엔 돈에 대한 탐욕으로 전 재산을 다 잃었다. 

나 스스로가 너무 한심했고 괴로웠다.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나 깊은 자괴감에 빠졌다. 

그런 내가 다시 또 1년간 생활을 하려니 눈앞에 컴컴했다. 그러나 고민할 것도 없이 일단 하루하루 먹고살려면 일을 해야 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소시지 공장이다.

처음에 일을 시작할 때는 불만투성이였다. 부정적인 성격으로 같이 동료들의 텃세에 여러 번 싸웠다. 결국에는 코리아 파이터라는 별명이 불리며 파트를 유래 없이 3번이나 옮겼고 최종적으로 나는 소시지를 자르는 동료들과 마음이 맞아 그곳에 정착했다. 사실 예전 성격이었으면 웃으면서 융통성 있게 생활했을 테고 동료들과도 친하게 지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나 스스로가 부정적이었고 예민했기 때문에 먼저 시비를 걸거나 부당하게 나오면 내가 참지 못했던 것 같다.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소한 것은 접을 줄 알아야 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바보 같은 행동이었던 것 같다. 사소한 신경전과 자존심에 나의 간절한 꿈을 포기할 뻔했기 때문이다. 내 파트에 정착해서 반복적으로 소시지를 자르다 보니 팔목, 어깨가 안 좋아 늘 얼음찜질하며 내일 출근 준비를 했던 날들이 떠오른다. 하루하루 별생각이 없었다. 

집에 가면 그냥 휴대폰 SNS로 누가 어떻게 사나 구경만 하다가 잠들고 다음날 일하고의 연속이었다. 나중에 자르는 일도 요령이 생기니 일할 때 머리보다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그때부터 사색의 시작이었다. 아침 6시 30분부터 저녁까지 4시 30분까지 하루에 10시간씩 정말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예전에 DMZ에서 멍하니 이북을 바라봤던 군 생활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이다.


첫 한 달은 현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내 주변은 다들 승승장구하고 취업하고 안정된 삶을 살고 있는데 나는 여기서 도대체 뭐 하는 것인가? 30을 바라보며 돈 한 푼도 없이 소시지 공장에서 소시지 자르는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1년 전만 해도 열정적이고 패기 넘치는 내 모습은 없고 어두운 표정에 말 수가 없어진 내 모습이 현실 같지 않았다. 한 달이 넘어서야 그 당시 내 모습이 현실에 와 닿았다. 앞치마를 두르고 위생 커버 망을 쓰고 장갑에 칼을 쥐고 있는 나의 모습이 나의 현실이었다. 순간 또다시 분노하기 시작했다. 


1억 4천에서 그만뒀어야 한다는 그런 생각 한 달, 7천만 원일 때 중간에 뺐어야 한다는 생각 또 한 달, 2, 3천만 원이라도 보험으로 둬서야 했다는 생각 한 달이었다. 자면서도 그때 잃은 돈에 대한 후회와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내가 1억이면 정말 할 수 있는 꿈들이 무궁무진한데 내 평생에 이런 기회는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나를 괴롭혔다. 돈 한 푼도 없는 내가 모험에 도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4개월이 지나니 이제는 스스로 반성을 하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세상을 탓하고 환경을 탓하고 법무부 장관, 보이지 않는 세력에 분노를 했지만 이제는 나의 탓으로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래 이렇게 했더라면, 내가 현명했더라면, 내가 그릇이 넓었더라면 나의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곤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3개월이 지나니 마음이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 당시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기계처럼 나의 몸은 소시지를 자르고 있지만 내 머리는 끊임없이 자아에 대해 사색을 하고 있었다. 

내 자아에 대해 생각을 해보니 삶의 방향과 목적, 내가 왜 도전을 하는지, 나는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하나씩 답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11개월간의 사색 끝에 나는 스스로를 들여보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내가 왜 슬픈 감정을 느끼는지, 왜 기쁜지, 왜 우울한지 더 깊이 들어가서 생각을 했다.

나는 삶과 사물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평소에 관심 없던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느낀 경험들을 글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글을 쓰며 그 당시의 지질했던 학창 시절보다 지금이 더 지질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돈 앞에서 사람이 얼마나 추해지고 비참하게 만드는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렇게 소시지 공장에서 일한 지 1년 가까이 지나서야 비트코인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 있었고 내 가슴속에 더 이상 비트코인 계좌는 들어있지 않았다. 비로소 나는 마음의 평온함을 찾은 것이다.


공원 벤치에 앉아 호수에 떠 다리는 백조를 볼 수 있었고 구름 한 점 없는 푸르른 하늘을 바라볼 수 있었다. 친구들과 즐겁게 바비큐 파티를 하며 행복을 느꼈고 책을 읽으며 예전과는 다르게 사람의 일생에 대해 조금씩 공감하며 눈물을 흘리는 나를 보며 스스로 감정이 풍부해졌구나, 사소한 것에 이렇게 행복함을 느끼는고 있는 나를 보며 또 한 번 행복을 느꼈다. 


이렇게 시련을 준 하늘에 감사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뻣뻣하게 고개를 들고 다니는 나에게 시련과 실패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선물을 받았다.

돈을 다 잃은 나는 같은 상황에서도 5개월은 늘 부정적이고 욕만 했지만 남은 6개월은 나에 대한 반성과 자아성찰에 감사함을 느꼈고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나의 행복은 비트코인처럼 물질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었고 그것을 선택하는 것은 순전히 나의 몫이었다.

즉, 같은 상황에서도 행복함이나 불행함을 선택하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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