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27. 꿈을 향한 가슴 뛰는 편지
나만 알고 있던 경험을 주변에 알리기 시작하니 내 경험에 가치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내가 오랫동안 가슴 깊이 간직해왔던 ‘강연’의 꿈을 이루기 위해 대형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대표님께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존경하는 청춘 도다리 윤효식 대표님께]
안녕하세요. 대표님! 가슴 뜨거운 청년 모험가 최지훈이라고 합니다. 저는 SNS를 통해 우연히 청춘 도다리 모임을 알게 되었고 그때 이후로 꾸준히 소식을 접하고 있습니다. 현재 저는 300일가량 세계일주 중이며 아시아 최초로 세계 10대 사막 중 하나인 호주 그레이트 빅토리아(1500km) 무동력 사막 횡단을 준비 중입니다.
이렇게 연락을 드린 이유는 대표님께서 남녀노소 누구나 강연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글을 본 적 있었고 그래서 저의 꿈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실 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한민국에는 존재하지 않는 직업 '모험가'를 꿈꾸고 있습니다.
훗날 훌륭한 어른이 되어 많은 분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나누어주고 싶습니다. 저에게 강연은 모험가의 꿈을 이루기 위한 필수요건인데 오늘날까지 묵묵히 도전만 하다 보니 사람들 앞에서 제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사실 제가 강연 무대에 선다고 생각하니 너무 두렵고 무섭습니다. 하지만 이 두려움을 넘어야 제가 성장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강연 무대에 서고 싶습니다. 단 몇 분만 계셔도 좋고, 10분만 이야기해도 좋습니다.
저는 남들에 비해 굉장히 개성이 강해서 주변 분들이 보기에 흥미롭게 느껴질 수 있고 이런 청년도 있구나 하며 신선한 자극이 될 수 있습니다. 저같이 독특한 청년이 한, 두 명은 있어야 조금 더 재미있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대표님이라면 주위에서 말도 안 된다는 제 꿈을 진심으로 이해해주시고 응원해주실 거라고 생각하여 이렇게 저의 진심이 담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제 꿈은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대한민국 1호 모험가'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본인의 꿈에 대해서 적어보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제 친구들 대부분은 과학자, 대통령 등 어떠한 장벽도 생각하지 않고 순수하게 꿈을 적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모험가’라고 적었습니다. 제가 '모험가'라고 쓴 이유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하나씩 이루고 나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던 이미지가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에서 더 나아가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입시학원을 다니고 오로지 암기를 강요하고 학업 성적만 중요시하는 사회에 물들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곤 대통령, 과학자, 모험가 등의 직업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실업계는 절대 안 된다는 주위 환경에 휩쓸려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이후에는 말씀 안 드려도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목표도 모른 채 새벽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했고 아침 6시에 일어나 공부를 시작하는 그런 기계 같은 생활의 반복이었습니다. 꿈과 목표가 없었다는 것에 비참했지만 더욱 비참했던 것은 내가 왜 이러고 있지라는 자각도 못하고 원래 이렇게 사는 게 정답이구나 하며 아무런 생각 없이 지냈던 것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운동을 좋아했고 미술과 음악, 자연을 사랑하는 학생이었지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잊고 살았습니다. 남들도 똑같이 밤늦게 야자하고 새벽에 입시학원 다니고 암기할 내용은 외우니까 원래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알았습니다. 그 누구도 너의 인생을 살라고 말하는 분이 안 계셨습니다.
이러한 제 삶은 대학교를 진학해서도 똑같았습니다. 그냥 남들도 다 대학 가니까 대학교에 진학했고 다들 대학 졸업하니까 졸업해야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때도 여전히 꿈이 없었고 미래에 대한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술 마시고 놀기 바빴습니다. 그렇게 저는 성인이 돼서도 가슴 뛰지 않는 삶을 살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요즘 사회는 대졸 아니면 받아주는 곳이 없다고 합니다. 실업계 출신, 고졸 출신의 학생들을 이미 인생의 낙오자라 부릅니다. 인생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의 압박에 못 이겨 저 또한 대학 졸업을 무조건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공장에서 찍어대는 인형처럼 타인에 의해 모양이 만들어졌고 색칠, 포장, 유통, 판매까지 인생의 순서가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비참한 일입니다. 그리고 정말 어이가 없는 일입니다. 내 인생의 순서와 방향이 정해져 있다니, 그것도 순전히 타인에 의해서 말입니다. 뒤늦게 이러한 사실을 깨달은 저는 타인이 만들어놓은 공장 같은 틀을 깨고자 노력했지만 남들과 다른 길을 걸으면 '다른 길'이 아닌 '틀린 길'을 걷는 사람으로 취급받아야 했습니다. 무언가 가슴 뛰는 일을 하려고 하면 그게 네 인생에 도움이 되냐, 네 미래의 직업에 도움이 되냐, 인생을 더 살아봐야 한다고 합니다. 저 또한 어느새 지인들에게 ‘조언’이 아닌 ‘허락’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곤 한두 명이 반대를 하면 제 스스로 안될 것이라고 단정 짓고 시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모두가 생각하는 길이 '옳은 길'인 것처럼 시나브로 동화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대로 대학을 졸업하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대표님도 잘 아실 겁니다. 졸업 이후로는 전장처럼 굉장히 치열한 취업 전선에 들어갈 차례입니다.
저는 경쟁률을 뚫고 내가 승진하려면 누군가를 밝고 올라가는 그런 경쟁 시스템이 너무 싫었습니다. 저는 늘 함께 꿈을 나누고 윈윈 게임 원했었고, 남들은 못하지만 나만이 할 수 있는 그런 개성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처럼 과열된 경쟁 사회가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했었습니다. 어느 날 제 친구가 본인이 준비하는 9급 공무원 경쟁률 900:1이라며 푸념을 놓습니다. 저는 답답해서 물어봤습니다. 900명은 공무원 준비생은 차라리 대학 등록금 몇천만 원으로 다른 더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얼마 전 뉴스 기사 보니까 고등학교 내내 수능 대신 공무원 시험 준비해서 성인이 되자마자 공무원 하는 학생들도 있더라. 한창 꿈을 꿀 나이인데 삶에 안주하는 길을 선택하다니 마음이 아프더라. 그런데 내 마음을 더 아프게 하는 건 그 뉴스 기사의 댓글을 보니 전부다 학생이 똑똑하다, 현실을 잘 아네, 나도 수능 말고 공무원 준비할걸, 부모님이 지혜롭고 현명하다고 하더라. 분명히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많은 시련과 실패도 겪어봐야 할 학생들이 가슴 뛰는 꿈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안정적인 직업에 대해서만 생각을 합니다.
또 다른 친구는 30군데가 넘는 기업에 이력서를 넣고 기다립니다. 저는 또 답답해서 물어봅니다. 대학교 전공과 전혀 관련이 없고 정말 네가 하고 싶은 것 있는데 왜 벌써부터 기업에 들어가려고 하니? 네가 하고 싶은 것에 시간도 있고 돈도 있으면 일단 한번 해봐야지 왜 해보지도 않고 취업하려고 하니? 정말 네가 좋아해서 지원한 거 맞아?
이렇게 물어보면 제 친구들은 오히려 저를 이해 못 하고 답답하다는 듯이 말합니다.
현실적으로 생각해라, 이제 좀 정신 차려라, 돈 모아서 먹고 살 걱정부터 해야지 지금 쓸 때 없이 뭐 하냐고 합니다. 다들 하는 대답은 똑같았습니다.
남들도 다 하니까.
저도 알게 모르게 '남들'이라는 단어를 의식해 늘 타인과 비교하고 스스로 자괴함, 불행함에 빠지고, 이루고 싶었던 꿈들도 "절대 너는 하지 못할 거야"라는 ‘남들’의 말에 기가 죽어 공무원 준비나 기업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공무원이 되거나 기업에 들어간다고 해도 그것이 과연 행복한 삶이었을까요? 제 시각에서 본 우리 청년들의 삶은 이렇게 쉽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하기, 실업계를 가면 낙오자가 되니 절대 안 된다. 두 번째, 대학교 입학, 반에서 꼴등하고 전공에 상관없이 일단 4년제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 안되면 전문대라도 무조건 들어가라. 그렇게 많은 학생들이 꿈과 열정 없이 일단 대학교 입학한다.
세 번째, 군대 입대 네 번째, 전역 후 대학교 졸업, 요즘 졸업 못하면 절대 취업 못한다고 한다. 다섯 번째, 취업 준비, 기업에 맞은 공통적인 스펙을 쌓기 위해 자소서 준비, 봉사활동, 토익, 자격증 취득 등을 준비한다. 본인이 관심도 없는 공무원 시험에 준비를 한다. 또는 본인의 꿈과 전혀 관련이 없는 기업에 취직하고자 수십 장씩 이력서 넣어본다. 일단 백수라면 주변 환경의 시선에 압박을 느낀다. 한국에서는 남들과 비교하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우선 돈을 벌 수 있는 '직장'이라는 타이틀이 필요하다. 이 길대로 간다면 본인의 가슴 뛰는 꿈에 도전할 시간이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분위기 휩쓸려 나도 따라가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은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문득 ‘레밍’이라는 북유럽에 서식하는 들쥐가 생각났습니다. 레밍의 무리 중 앞에 있는 한 명이 먹거리를 찾다가 절벽 아래로 떨어지면 수십만의 레밍들이 그 레밍을 따라 절벽으로 뛰어내린다고 합니다. 그것이 낭떠러지 인지도 모르고 말이지요.
지금 우리는 남들이 가는 대로 따라가는 레밍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 봤습니다. 이러한 삶은 자녀가 안정적이길 바라는 ‘부모님이 원하는 삶’도 포함되며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서 현실적으로 조언해주는 ‘타인이 원하는 삶’도 포함됩니다.
내 인생 책임져주지 않을 타인의 말을 들으면서 본인의 가슴 뛰는 꿈을 쉽게 포기하거나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부모님, 타인이 원하는 삶이 아닌 '나' 자신이 원하는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는 60,70년대부터 노동, 근면, 성실을 강조 해왔던 사회풍토였습니다. 이러한 사회풍토는 30,40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지금도 우리에게 똑같은 것을 요구합니다.
무언가 도전하려고 하면 네가 아직 어려서 그렇다, 더 살아봐야 한다, 가정 있어봐야 정신 차리지, 아직 결혼 안 해봐서 인생을 모른다. 사는 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내 때는 얼마나 힘들었는데, 네가 힘들게 돈 벌어봐야 저런 소리 안 하지, 취업 준비 안 하고 놀아서 뭐 하니, 일단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돈은 벌어야지, 그게 네 인생에 도움이 되니, 직업과 관련 없는 것을 해서 무엇에 쓰려고 하니?
시대는 정말 급속도로 변하고 있고 이미 많이 변했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사회풍토는 우리 청년들이 창의적인 생각을 표출하고 가슴 뛰는 도전하는 데 있어 늘 망설이게 합니다.
저는 편지를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분들에게 현실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제 생각은 지금 에너지 넘칠 때 최대한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이러한 경험들이 저에게 자양분이 되어 훗날 저의 그릇을 크게 넓혀줄 거라고 생각하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일단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인 요소로만 판단하고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지금도 제가 무언가 도전하려고 하면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사람은 극히 소수입니다.
우리 부모님 또한 마찬가지로 제가 어떠한 리스크도 없이 남들처럼 평범하고 소소하게 살길 바라십니다. 그냥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기만을 바라신다고 하시지만 그렇게 산다면 저는 닭장 안에 갇혀있는 닭처럼 하루하루 불행했을 것이고 이미 병든 닭이 됐어있었을 겁니다.
다들 부모님 말 들어서 나쁠 것 하나 없다고 하시는데 저도 100% 공감합니다. 정말로 나쁠 것 하나 없으며 항상 도움이 되는 말씀만 해주십니다. 그러나 부모님의 좋은 말씀은 제가 리스크를 감수하고 무언가 도전을 하는 데 있어 망설이게 합니다.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저는 일생에 한 번뿐인 20대 청춘을 평범하고 안정적으로 보내기 싫습니다. 먼 훗날 20,30년 후에 지금 나의 20대를 돌아본다면 도전하지 않은 것에 대해 굉장히 후회할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모하지만 일단 부딪치려 하고 모두가 안될 거라는 것들에 일단 도전하려고 합니다. 저의 20대 청춘은 아직도 많이 부딪쳐봐야 하고 많은 실패와 시련도 겪어봐야 합니다. 그래서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법을 스스로 알아야 하고 어떠한 고비가 찾아와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견고한 멘틀이 필요합니다. 다들 요즘은 100세 시대라고 말씀하시는데 취업 조금 늦으면 어떻고 결혼 조금 늦으면 어떻습니까? 왜 20대 중반은 취업 준비를 해야 하고 왜 30대는 결혼, 차, 집을 마련해야 하나요? 가슴 뛰는 꿈에 달려가다 보면 남들보다 빠를 수도 있지만 남들보다 느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군대는 언제 가니, 취업은 언제 하니, 결혼은 언제 하니, 집은 언제 사니, 아기는 언제 낳니 등 그 나이에 맞는 틀에 맞추어 질문을 합니다. 다 본인만의 때가 있고 한 나무에 꽃봉오리들조차도 저마다 피고 지는 시기가 다른데도 말입니다.
저는 어릴 적에 푸른 바다에서 헤엄치는 힘찬 고래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항 속의 병든 금붕어처럼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어항 속의 세상만이 내가 아는 세상이라고 단정 짓고, 여긴 어딘지, 나는 누군지, 왜 존재하는지 모르는 그런 금붕어 말입니다. 이 금붕어가 불과 몇 년 전의 저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저는 예전과 다릅니다. 저는 지금까지도 어릴 적 순수한 꿈이었던 '모험가'를 가슴에 품고 있습니다. 드넓은 바다에서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보고 느끼며 거친 파도를 힘차게 나아가는, 무모하면서도 패기 넘치는 거대한 고래가 되는 상상을 해봅니다.
저는 현재 세계여행을 하며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가슴 뛰는 꿈들을 하나씩 이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꿈들은 매스컴에서 나오는 대단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매일 밤마다 가슴 뛰는 꿈을 상상했왔고 그 결과 하나씩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무엇이든 해보면 생각보다 쉬운 것이구나!
앞으로 계획은 이전보다도 더욱 말도 안 되는 것들을 할 예정입니다. 먼 훗날 무동력 남극횡단과 개썰매 타고 북극 횡단도 하고 싶고 책 출판, 매스컴 출연, 전국 강연 활동을 하며 선한 영향력을 나누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모두가 미쳤다고, 불가능하다고 말하지만 저는 도전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며 진심을 다하면 그 간절한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태어나서 편지를 써본 적이 거의 없고 글 재주도 없지만 이렇게라도 제 진심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미래에 모험가를 꿈꾸는 사람으로서 대표님과 좋은 인연이 되고 싶습니다.
17년 3월 9일부터 31일까지 한국에 있을 예정입니다. 대표님께서 강연 무대를 마련해주신다면 비록 강연 경험은 없지만 진심을 다해서 준비하겠습니다. 잔잔한 나비의 날갯짓이 큰 파도를 일으키는 것처럼 제가 이번 첫 강연을 통해 훗날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될 수 있게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바쁘신 와중에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17.3.4 가슴 뜨거운 청년 모험가 최지훈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