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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험제이 Mar 17. 2019

100가지 꿈에 도전한
가슴 뛰는 청년의 이야기

Episode 3. 20년 후의 나에게 질문하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어릴 적부터 많은 경험을 하길 바라셨다. 그렇게 나는 그 시대에 붐이 일어났었던 피아노, 수영, 바둑, 탁구 등을 하나씩 배웠다. 그러던 어느 날 초등학교 4학년 때 수영장을 다녔었는데 장난기 넘쳤던 나는 키가 닿지 않는 1.5M 풀에서 빠져 죽을뻔한 고통을 느낀 적이 있었다. 


이 후로 나는 샤워하다가 얼굴에 물이 닿으면 나도 모르게 숨이 헐떡거릴 정도로 물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성인이 된 나는 친구들과 바닷가에 놀러 갔고 우연히 수상 인명구조원을 보았는데 그때의 감정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해변가에서 검은 선글라스에 붉은 팬츠를 입고   레스큐 튜브를 메고 다니는 모습에 나는 눈을 뗄 수 없었다.  

나는 물에 대한 열등감이 많은 겁쟁이였지만 인명구조원은 물에 빠진 익수자를 구하는 직업이기에 그 모습이 너무 부러웠던 것이다. 나도 저렇게 되면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상상을 했다. 


그러나 나는 누군가? 샤워하다가 얼굴에 물이 닿으면 숨도 제대로 못 쉴 정도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데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나는 바보처럼 밤잠을 설칠 정도로 이에 대한 고민 시작했고 그렇게 3개월 지났을 무렵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20년 후의 나라면 지금 나에게 도전하지 않은 것을 후회할 것인가 후회하지 

않을 것인가?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니 안 하면 두고두고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정답은 나에게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겁도 없이 수상인명구조원 과정을 신청했고 3개월간 수영 연습을 했다.

그 해 여름, 대한적십자 수상 인명 구조원 교육 과정 첫 교육 날이었다.  

안이하게 연습했던 나에게는 훈련 한 시간 만에 내가 왜 지원했을까 하는 후회를 하게 되었다. 발이 닿지 않는 5m 풀에 있는 것 자체로도 나에게는 큰 부담이었던 것이다. 하던 대로 물에 떠있으면 되는데 심리적인 부담이 커서 그런지 호흡이 너무나 힘들었다. 


지금도 이렇게 힘든데 남은 7일을 어떻게 훈련받을까 나는 두려움을 느꼈고 결국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채  포기하고 말았다.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 얼마나 마음이 착잡하고 서러운지, 내가 이 정도밖에 안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지옥 같은 그곳에서 빠져나왔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나 자신이 너무 싫었다.


이번 인명구조원 과정은 물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자 했던 나에게 오히려 독이 되었고 

그냥 편하게 살면 될 것을 뭐하러 도전했나, 차라리 모르고 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이러려고 수상 인명구조 자격증 과정에 도전했나 자괴감이 들었다.

그래, 내 주제에 무슨 인명구조원이야 하는 자책감과 아쉽고 속상한 마음들이 한 달 동안 나 자신을 괴롭혔다. 그렇게 한 달간 우울했을 무렵 침대에 누워 어두컴컴한 천장을 보며 나는 도대체 미래에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20년 후의 나는 지금 나에게 다시 일어나라고 할 것인가 여기까지 도전했던 것으로 만족하라고 할 것인가?

미래의 나는 한 번의 실패를 겪은 나에게 다시 일어나라 말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앞으로 두고두고 후회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이후로 나는 수영 동아리를 가입했고 매주 토요일 새벽에 수영을 했다. 그 당시 술을 엄청나게 마셨는데 금요일에 새벽까지 밤을 새더라도 잠 안 자고 나갈 정도로 의지를 보였다. 친구들이 신나게 놀 때 나는 주 3회 이상 혼자 버스를 타고 수영장을 다녔다. 그 과정이 지겨울 때도 많고 고독했지만 수영에 소질이 없었기 때문에 두배 이상으로 열심히 해야 했다.  


그리곤 책상 앞에 멋진 인명구조원 그림을 붙였고 잘 때마다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Lifeguard 로고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레스큐 튜브를 들고 있는 나를 상상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났고 벼르고 벼르던  다시 인명구조원 자격과정에 다시 지원했다. 

이 정도 준비했으면 이번엔 쉽게 수료할 줄 알았는데 어찌나 힘들었는지 그 당시 함께 지낸 룸메이트가 내가 잠을 잘 때 끙끙 앓으며 식은 땀을 흘리고 잠꼬대까지 했다고 한다.

이러한 힘든 과정을 거쳐서 끝내 수상인명구조원이 될 수 있었다.       

          

1년의 간절함 끝에 드디어 내가 수료하다니! 남들은 한, 두 달 준비해서 수료한 사람도 있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내가 오직 물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냈다는 것에서 정말 행복했다.

그 후 1년이 지나고  나는 더 큰 결심을 했다. 인명구조원을 양성하는 인명구조원 강사과정 '수상 안전법 강사'에 도전하기로  한 것이다. 이 강사과정은 모든 대한민국 수상 인명구조원들의 로망이었고 인명구조원 중에서도 5%도 안 되는 사람만이 취득한 자격증이다.  

나와 함께 인명구조원을 수료했던 사람들조차 동경만 할 뿐 아무도 지원하지 않을 정도로 험난한 과정이었다. 


그렇게 강사과정에 들어갔고 수영 연습이 많이 부족했던 나는 정말 개거품을 물면서 교육을 받았다. 하필 또 현역 SSU(해양구조대) 정예 멤버 15명들과 함께 해서 강도가 극심하게 높았던 것 같다.

교육 1일 차, 온몸에 진이 다 빠질 정도로 힘들었고 내가 왜 이곳에 왔을까 후회하기 시작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구보 및 체력 단련하고 오전 오후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다. 아침 8시부터 저녁 5시까지 물에 떠있는 채로 훈련받고 저녁에는 쉬지 못하고 빽빽이 리포트를 쓰고 모의 강의 연습을 해야 해서 정말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7일 차, 훈련 중 반기절하다시피 몸살이 났다. 저녁에 머리가 깨질 것처럼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갔고 링거를 맞았다. 그리곤 다시 숙소 도착해서 모의강의를 준비했다. 매일마다 한숨이 나왔고 마음이 착잡했다. 휴식시간에는 교육생들 서로가 말없이 침묵만 흐를 때가 많았다. 그만큼 모두가 힘들었고 말을 못 했다. 내 인생에서 이것보다 힘들일이 있을까 생각하며 하루하루가 지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칠 것 같이 힘들었지만 수료가 끝난 10일 후에도 나는 어차피 살아 있을 것이다 하는 생각으로 버텼다. 

그렇게 지옥 같은 10일을 견뎌 테스트를 통과했고 단 한 번의 열외 없이 강사과정을 수료할 수 있었다. 내가 정말 이야기로만 듣던, 꿈으로만 생각했던, 수영인들의 동경의 대상이자 로망인 ‘수상안전법 강사’가 된 것이다. 


많은 시행착오도 겪고 3년의 간절함 끝에 드디어 상상을 현실로 이루어 낼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물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진 맥주병에서 수영 관련 4개의 관련 자격증을 취득한 수영강사, 수상 인명구조원이 되었고 다양한 해양스포츠를 즐길 정도로 물을 사랑하게 되었다. 이때의 도전은 지금도 내 인생에서 엄청난 삶의 에너지가 되고 있다. 


40살의 내가 20살의 나를 마주한다면 무모했다고 말할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줘서 고맙다고 말할까? 적어도 30살의 나는 결과에 상관없이 후회 없는 선택이었으며 정말 대견하고 자랑스럽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렇게 나는 처음으로 지인들에게 인정받기 시작했고 나의 자존감은 하늘을 찌르듯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느려도 된다, 실패해도 된다, 그러나 포기만 하지 않으면 나의 가슴 뛰는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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