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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호 Mar 29. 2023

아포리즘 11

2023.2.25~2023.3.27

부당한 억압을 마치 인륜을 수호하는 것인 양, 사리분별 못하는 걸 진보적인 개방성인 양 포장하면 안 된다.(2023.2.25)


애고 어른이고 소위 선을 넘는 자들, 경계를 모르는 자들은 분별력 없는 유아적인 인격 구조를 가진 것이다.(2023.2.26)


애나 애어른이 떼쓰면서 어른을 탓하면, 부모일 경우, 죄책감을 느낄 게 아니라 혼꾸녕을 내야 하지 않겠는가.(2023.2.27)


안타깝게도, 오늘날 젊은이들이 허세를 부리게 만드는 건 많은 경우 허영심보다도 불안의 정동일 것이다.(2023.2.28)


일탈 자체가 상품화되고 진부해져 버린 형국엔 실질적 파격은 낡아서 버려진 가치들의 가치를 재고하는 일 아닐까?(2023.3.1)


갈등을 끝까지 소통으로 풀어보려는 사람들에게 묻는 바, 상대방이 그 갈등에서 쾌락을 얻고 있다면 어쩔 텐가?(2023.3.2)


일단 히스테리증자는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의 지속을 즐긴다. 수동공격형 가스라이터 혹은 변혁의 주체.(2023.3.3)


강박증자와 달리 히스테리증자는 도발적이지만 그 사실이 정의를 약속하긴 힘들다. 히스테리 예찬론은 의심스럽다.(2023.3.4)


사상은 미디어의 즉각적 충동의 흐름 앞에 녹아내린다. 이 상황을 타개하는 데 사유의 성패가 달려 있단 듯이.(2023.3.5)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무엇이 사유할 만한 사태인가?(2023.3.6)


다른 것들과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그 시선의 주체와의 관계를 고려해야만 사물과 사태가 바로 보인다.(2023.3.7)


혼돈의 시대면 우선 먼저 그 혼돈을 일시에 굽어볼 수 있는 높은 시야가, 어떤 종류의 철학이 필요할 것이다.(2023.3.8)


한국의 인생 전체에 걸친 경쟁과 서열 문화가 나르시시즘과 우울증이 횡행하기 좋은 환경이란 걸 어찌 부인하랴.(2023.3.9)


새삼스럽지만, 가짜배기가 가짜배기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서 사회적 "성공"을 이루는 일은 비일비재하다.(2023.3.10)


동네북은 강자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공인된 약자도 아닌 누군가로 낙점된다. 이게 소위 이대남의 처지 아니냐!(2023.3.11)


타자의 타자성을 생각한다는 건 그 앞에서 머뭇거린다는 뜻이지 그에게 간단히 감정이입해 버린다는 뜻이 아니다.(2023.3.12)


혹자가 자꾸 멋대로의 틀에 맞춰 당신의 실재를 억압하는 건 그 자신의 환상을 유지하기 위한 필사적 제스처다.(2023.3.13)


나쁜 거라면 뭐든一불안들一특정인에게 투사하는 제스처가 바로 나치의 유대인 가스라이팅의 원리와 같은 것이다.(2023.3.14)


혹자는 제 외설적 욕망一이 자체는 무해하다一을 흐릿하게 하기 위해 상대방의 저속함을 요구, 투사, 단죄한다.(2023.3.15)


결정 책임을 미루는 것이면서 배려하는 것인 양 포장하면 곤란하다.(2023.3.19)


어른들에게 상속받은 젊은 세대 다수의 열패감과 소수의 뒤틀린 우월감은 역한 부작용과 함께 오래도록 지속된다.(2023.3.20)


만만해 보이는 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은 지독한 악덕이다. 가짜배기는 업신여겨도 좋다.(2023.3.21)


아상我相을 내려놓아야만이 변증법적 반전의 계기를, 모든 걸 집어삼키는 그 괴물적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2023.3.22)


어떤 의존적인 사람은 예컨대 탁월한 것에 대해 경탄할 때조차 부모나 권위자의 제스처를 참조해야 하는 듯하다.(2023.3.25)


죄와 그 책임의 유무를 결정짓는 건 비윤리적인 생각의 유무가 아니라 비윤리적인 행위의 유무다.(2023.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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