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들을 잘 기억하는 인간이 있다. 어디 가서 무얼 먹었고, 너는 거기서 어떤 말을 했고, 결국 그날의 추억은 어떤 방향으로 달려갔는지를 기억하고 있는 인간이 있다. 그 기억력은 술 한 잔 앞에서 옛날 얘기를 할 때만 도움이 된다. 그리고 항상 쓸데없이 기억력이 좋다는 핀잔을 받는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 쯤이었을까. 기억력은 결국 반복에서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이야기의 결론은 결국 늘 복습을 철저히하라는 선생님의 잔소리였지만, 그 이야기는 뇌리 속에 박혀 있다. 그래프가 기억이 난다. X축은 시간이었고, Y축은 남아 있는 기억.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은 감소하지만 다시 그 기억을 꺼내 곱씹는다면 다시금 회복되어 더 오래 남아있는다는 것.
나는 타인과의 쓸데없는 모든 것들을 내 안에 담아두고 늘 재생한다. 누구는 무얼 좋아했고 어떤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강박적으로 기억해둔다. 이 강박이 어디서 온 것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태생적이었나, 환경적이었나. 가끔은 지겨울 정도로 추억을 재생한다.
그래서인지 다른 인간으로 살아보고 싶다. 그런 강박이 없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 어떤 이유에서건, 권태의 가장 큰 형태는 스스로에 대한 권태다. 삶이 지루한 것보다, 스스로에게 지루한 것이 더 파괴적인 트리거가 된다.
요즈음의 삶은 권태의 연속이다. 바쁘지 않다는 뜻도 아니고, 할 것이 없다는 뜻도 아니다. 심지어 새로운 환경에 놓여 있고 새로운 것들을 하는데도 다소 권태로운 것은 어째 스스로에게 질려버린 것이 아닐까. 그럴 때면 가끔 글을 끄적이거나 옛 편지를 보고는 하는데 그래서 몇 자 내렸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