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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지호 May 11. 2020

날씨를 보는 버릇과 큰 우산을 챙기는 버릇이었다

두 번째 알람을 끄고 한숨과 함께 일어났다. 첫 번째 알람이 울릴 때 일어났다면 스트레칭 정도는 할 시간이 있었을 테지만 두 번째는 그렇지 못했다. 바삐 샤워를 하고 옷을 적당히 갈아입고 방울토마토 몇 알을 입에 넣었다. 컵을 꺼내기도 귀찮아 우유에 입을 대고 마시면서 핸드폰으로 오늘 날씨를 확인했다. 다행히 오후에 비 소식이 있었고 신발장에 걸려있는 우산을 꺼냈다. 늘 느끼지만 키 작은 내가 쓰기에는 영 큰 우산이었다.

집을 나서며 부디 오늘은 비가 오기를 바랐다. 오늘은 당신을 만나는 날이었고 어쩌면 운 좋게도 당신과 우산을 함께 쓸지도 모르는 날이었다. 당신은 꼼꼼함과는 영 거리가 멀어 우산을 늘 챙기지 않는 편이었다. 그래서 예전에 당신과 우산을 함께 쓴 이후로 난 두 가지 버릇이 생겼다. 날씨를 보는 버릇과 큰 우산을 챙기는 버릇이었다. 짧은 핀잔 몇 마디와 함께 나는 당신과 우산을 함께 쓰고 짧은 거리를 단 둘의 공간에서 걸을 수 있었다. 나는 바보처럼 그 시간을 행복해했다. 당신의 웃음소리를 조금 더 가까이서 들을 수 있었고 당신과 어깨를 부딪히며 티격 댈 수 있었다.

그래서 비 오는 날을 참 좋아했다. 용기가 없어 더는 다가가지 못했지만 그래도 비 오는 날을 바랄 수는 있었다. 운 좋게도 오늘은 딱 적당하게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그것을 핑계 삼아 메신저를 당신에게 보낼 수 있었다. 비 온다. 오늘은 우산 챙겼니. 아무래도 당신은 망했어 우산 안 챙겼다라는 답장을 보낼 터였고. 나는 자연스럽게 삼십 분까지 그 앞으로 갈게라고 말할 것이 분명했다. 그 모든 당연한 순간에서 나는 비 내리는 날을 참 좋아했다. 그것이 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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