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습작

취미와 특기

by 석지호

요즘에도 그런 것이 있나. 어렸을 적에 새 학기가 시작되면 담임 선생님은 자기소개를 위한 종이를 나눠주곤 했었다. 이름을 쓰고 나면 취미나 특기를 쓰는 칸이 늘 남겨져 있었다. 당연히 취미가 뭐고 특기가 뭐고 뭐가 다른거냐는 물음도 종종 따라붙었다. 담임 선생님의 얼굴은 오래된 사진처럼 기억나지 않지만 답변은 기억하고 있다. 취미는 좋아하는 것, 특기는 잘하는 것. 그러니까 어릴 적 부터 학교는 어린아이에게 사회의 냉혹함을 가르치고 있었던 것이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대부분 나눠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지금에야 그런 것들을 서로 묻고 나누는 것은 어색해져버린 나이가 되어버리고 말았지만, 그래도 가끔은 취미를 이야기하고는 한다. 특기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은 이제는 더 이상 잘 하는 것이 없다고 느껴서일까. 아니면 일 얘기는 뒤로 하고 몇 남지 않은 희끗한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일까. 그런 대화를 마주하면 어느 정도 둘러대며 말 할 수 있으면서도 괜히 머릿속에는 내 진짜 취미는 뭐고 특기는 무엇이냐는 생각이 맴돌고는 한다.


아무래도 취미는 슬퍼하는 것이고, 특기는 기다리는 것. 그리고 몇 달 전 어떤 날은 그 취미와 특기가 어떤 한 점에서 만났던 날이었다. 사실 슬퍼하는 것과 기다리는 것은 모두 같은 것에서 온다.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 어떤 연유에선가 무언가를 크게 기대하고 있었고, 오랜만에 찾아온 어떤 설렘 같은 것을 신고 소풍 가는 마음으로 잠을 잤더랬다. 그리고 나는 퍽 잘도 하루를 기다렸다. 물을까 말까 하다가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자는 심정으로.


늘 그렇듯이 기다리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아무래도 상상의 여지가 많으니까. 하지만 현대 문명이라는 것은 꽤나 바쁘게 지나가는 것이고 그래서 기다리는 것도 어느정도 한계가 있는 특기이고 만다. 어떤 서프라이즈가 있을까 기대한 날은 결국 침대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며 오늘도 어제와 같았다는 슬픈 안도감으로 바뀌어버리고 말았다. 집 섶에 들어서면서도 뭔가 있을까 했던 상상은 버릇없는 몽상으로 남아버리고 만 것이다. 특기는 바로 취미와 맞닿아 있었고, 꽤 슬픈 밤을 보냈다.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조금은 느끼는 때는, 기다리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더없이 쉬워졌다는 것이다. 매듭짓지 못하고 끊어내는 실을 보면서 괜히 서글퍼지는 것이다. 그렇게 취미는 지속되어가는 것이고 특기는 다시 오지 않길 바라고는 한다. 아,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취미를 물어보고 특기는 학창시절 저 너머로 구겨 던져버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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