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 열쇠를 문고리에 넣어 비틀어 돌렸다. 혹시나 누군가 있을까 해서 인기척을 냈지만 들리는 것은 없었다. 형광등을 켜고 창문을 열어 활짝 놓은 뒤 머그컵에 인스턴트커피를 털어 넣었다. 따뜻한 물을 넣고 커피 비닐로 휘저으며 실험 테이블에 앉았다. 나는 주말에 홀로 있는 연구실의 분위기를 참 좋아했다.
아무도 쓰지 않아 차갑게 쉬고 있는 기계들의 전원을 켜고 시약들을 어지럽게 잔뜩 꺼내 배지를 만들었다. 어젯밤에 잠을 설치다가 생각해 둔 실험들을 몇 개 동시에 진행하며 혼자 조용히 읽고 싶었던 논문을 찾아 인쇄했다. 과하게 단 커피맛과 조용히 돌아가는 기계 소리와 텁텁한 미생물 냄새와 새 종이의 매끈함의 조합은 아무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내 행복이었다.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미래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다른 이들이 쉬고 있을 때 조금 더 나아간다는 앙큼한 뿌듯함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간다는 시큼한 자신감을 함께 느꼈다. 늘 과거나 현재에 묶여 살아가던 내가 내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