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만나는 날이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어김없이 취하는 날이었다. 당신과 나는 늘 대수롭지 않은 이유로 만나 서로의 술잔을 채워 주고는 했다. 당신과 술을 마시면 언제나 꽤 편하게 취했다. 몽롱하게 당신의 삶을 듣고 있다가 하늘을 바라봤다. 올해의 첫눈이 흔들리며 멍청하게 내려왔다.
첫눈을 보는 사람이 하필 나라며 핀잔을 늘어놓는 당신을 보며 나는 살면서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일을 했다. 나는 당신의 눈을 피하며 내 삶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머그컵에 가득 차 있었던 소주에 대하여. 문자함에 꽉 차 있었던 죽으라는 악담에 대하여. 당신은 안주로 시켰던 구운 명란을 지분거렸고 나는 내 삶을 그 앞에 게워냈다. 내 어긋난 삶에 대해 타인에게 처음으로 말해 본 날이었다.
묵묵히 듣고 있던 당신은 집에 갈 시간이라는 이야기를 했고 우리는 자리를 정리했다. 택시를 기다리는 중에도 눈은 계속 오고 있었고 눈보다 새하얀 옷을 입었던 당신은 갑자기 가르랑거리며 울음을 토해 냈다. 나는 적잖이 당황해 당신에게 하는 말인지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인지 그 누구도 모를 같잖은 괜찮다는 말을 반복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당신을 적당히 끌어안는 일이었고 당신은 내리는 눈보다 펑펑 울었다. 나는 멍청하게 당신을 다독이며 내가 울어본 적이 대체 언제였는지 가늠하고 있었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것을 보아 눈물을 흘린 것이 참 오래 전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울지 못하는 나 대신 당신이 울어주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몇 분을 훌쩍이던 당신은 목 메인 목소리로 몇 마디를 입에 담았다. 나는 네가 행복하면 좋겠어. 나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언제나 삶은 행복은커녕 불행하지 않으면 다행인 것에 불과했고, 평범한 것은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었다. 내게 행복은 우울함을 향한 이정표와 같아서 늘 행복 뒤에는 슬픈 일들이 꼬리를 물고 벌어지고는 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행복하기보다는 하루가 평범하기를 바랐다.
그런 삶에 누군가가 행복을 빌어준다는 것이 나는 퍽 충격적이었다. 거짓말처럼 술이 깼고 당신을 배웅하는 순간까지 나는 멍해 있었다. 그리고 이름 모를 골목에서 아무도 모르게 토악질을 했다. 토를 하며 눈물이 났다. 그때 나는 눈물겹게 고맙다는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