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간 내 눈에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종양이 생겨 암인가 걱정을 하기도 했고 녹내장 증세가 보여 눈이 바로 멀지는 않을까 고민을 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기분일까. 굳이 주어를 붙이지 않아도 되겠다. 어차피 본다는 것은 눈을 통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아침 햇살을 볼 수 없으니 낮을 알 수 없겠다. 일어난 것과 일어나지 않은 것이 같으니 일어날 가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사실 많은 것들을 보기 위해 많은 곳을 다녔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많지 않다. 사진을 보고서야 이런 날이 있었다는 것을 어렴풋하게 떠올리는 기억력으로 내 검은빛 여생에 색칠을 할 수 있을까. 좋은 것만 보고 살지도 않았다. 좋은 것만 보고 산다는 것은 사실 의미도 없고 필요도 없다. 좋은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두루 보고 살아야 내면에 저울과 나침반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둘 다 보지 못한다는 것은 꽤 슬픈 일이다. 나는 이제 성장하지 못하는 걸까.
듣는 것은, 맡는 것은, 맛을 보고 또 느끼는 것은 참 중요한 일이지만 보는 것은 더 중요한 일이다. 눈이 먼다면 나는 아무래도 그런 말은 쓸 수가 없겠다. 보고 싶다. 그래. 보고싶다는 말은 할 수가 없겠다.
오늘 하루가 울적해 당신이 꼭 보고 싶다거나. 맥주를 마시며 옛 생각에 조금 잠겨 당신이 얼핏 보고 싶다거나. 사회에서 빛나지는 못하더라도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는 당신의 소식을 듣고 당신은 이 늦은 저녁에 무얼 하고 있는지 참 보고 싶다거나. 그런 말은 입에 올릴 수가 없겠다. 그것을 내뱉는 순간 너무 자조적인 말이 되어버리겠다. 그러니 그때가 되면 그 말을 하고 싶더라도 꼭꼭 씹어 다시 삼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