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날짜를 써 내려가다가 문득 기시감을 느꼈다. 연도가 바뀌어버린 일월이면 늘 느끼는 감정이다. 아직까지는 새해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새로워진 나이와도 아직 친해지지 못했다.
돌이켜보니 당신의 나이가 되었다. 다 큰 어른인 척 젠체하는 어린이 었던 나는 비로소 당신이 했던 고민들을 조금은 이해했다. 예전에 내가 당신을 보며 느꼈던 감정을 누군가가 나를 보며 떠올리지 않을까 부끄러웠다. 초조함. 불안함. 답답함. 뭐 그런 것들이 혹여나 얼굴에 칠해져 있지 않나 해서 찬 물에 세수를 몇 번 했다.
차를 끓여 마시며 옛 일을 굳이 떠올렸다. 기억은 오래된 그림처럼 색이 바래 희미했다. 당신이 좋아했던 것을 떠올리다가 얼굴을 찌푸렸다. 연노란색이었는지 연보라색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파스텔톤이라는 것 정도만 선명했고 물감의 주인을 찾을 길이 없었다. 그때 나는 내가 당신을 잊었다고 생각했다.
예전의 내가 꿈꾸던 날에 비록 당신은 없지만 그것이 꼭 허무하진 않았다. 당신과의 추억은 책 속에 꽂아 두고 잊어버린 네 잎 클로버가 되었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구태여 힘을 들여 찾을 노력도 하지 않을 그런 것이 되어 버렸다. 나는 이 미지근한 무기력함이 나이 때문인 것은 아닐까 조금 고민했다. 당신이 그러했듯이 나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