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몇 주 째 같은 상황에 반복되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당신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지 못 하고 있었다. 시답지 않은 하루들을 나누는 것은 자신이 있었지만 그 안에 마음을 섞어 보내지는 못했다. 사랑을 말하기엔 나는 너무나도 작았다. 키는 물론이거니와 마음이 참 작았다. 늘 쓸데없이 높았던 자신감은 당신 앞에서 퐁퐁 흔들려 사라졌다.
어제도 밤을 보내고 새벽을 맡으며 몇 가지 단어를 골랐다. 단어를 엮어 문장을 만들었고 그 문장에 맞는 다른 문장들을 몇 가지 더 준비했다. 굳이 아무도 없는 방에서 단어 하나하나에 힘을 주어 문장을 읽었다. 영화를 보러 가자거나 오랜만에 치킨을 먹자거나 하는 그런 사소한 문장을 마치 어려운 수식을 대하는 것처럼 읽고 외웠다. 그러면서도 머리 한 구석에는 어차피 말하지 못할 것이 뻔한데 대체 무슨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는지 고민했다.
답답함을 잘게 썰어 물 몇 잔을 넣고 갈았다. 입으로 왕창 넘기고는 한숨을 짙게 뱉어냈다. 내 제안에 대해 거절할 말을 생각하는 당신의 표정을 떠올리는 것은 조금 슬픈 일이었다. 수많은 책들과 영화는 내게 성공만을 보여주었지 그 숨 막히는 침묵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았다. 바보 같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 주변을 감쌌다. 뺨을 손으로 치며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몇 분 후면 다시 당신을 보는 시간이었다. 숨기지 못할 설렘이 따스하게 복부에서부터 차올랐다. 그리고 나는 다시 어린아이보다 작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