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랫거리도 없는 무료한 밤이었다. 보지도 않을 미국 드라마를 컴퓨터 스크린에 걸어 두고 듣지도 않을 노래 몇 가지를 골라 랜덤 재생 목록에 넣었다. 침대에 잠겨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열고 익명게시판에 들어갔다.
이름 석 자를 걸고 글을 쓰던 실명의 시대에서 적당한 닉네임을 쓰는 별명의 시대로 바뀐 지는 꽤 오래 지났다. 더 나아가 사람들은 익명의 시대에 발을 디뎠다. 내가 누구인지 알릴 필요도 없고 다른 이가 누구인지 알 필요도 없는 곳이다.
그래서 현실과는 다르게 감정의 크기가 크고 색도 원색에 가깝다. 나는 꽤 자주 익명게시판에 들어가 그 원초적인 감정들을 핥고는 했고 가끔은 내 곯은 이야기를 내뱉곤 했다. 어차피 하루 지나면 사라질 글들이기에 부담도 적었다.
오늘도 그런 날들 중 하나일 것 같았고 이불속에서 게시물을 읽었다. 그중 긴 제목과 글에 비해 별 댓글이 없는 글에서 잠깐 멈췄다. 그 글을 쓴 당신은 참 많은 것들을 후회하고 있었다. 내용이 크게 자극적이지 않아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영 적었지만 당신은 그 관심 하나에 답글 하나씩을 꼬박꼬박 남기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당신은 어제와 오늘을 슬퍼하고 있었다. 또 이 슬픔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작은 핸드폰 화면 속에서 몇 년 전의 나를 보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당신이 미래마저 후회하지 않았으면 하는 기분에 댓글을 남겼다.
집에 계란이랑 식용유가 있냐는 물음이었다. 뜬금없는 질문에도 당신은 성실하게 계란은 없다고 말했다. 나는 계란 대여섯 알을 사 오라고 다시 글을 남겼다. 몇 번의 당신의 거절 속에서도 나는 막무가내였고 이십 분 정도 되는 실랑이 끝에 당신은 계란을 사러 나갔다.
나는 처음 등교하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는 어른처럼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당신은 몇 분 후에 계란을 사 왔다고 댓글에 사진을 남겼고 나는 묘하게 안도했다. 그리고 계란말이를 만드는 방법에 대한 글을 썼다. 그리고 당신은 열심히 계란말이를 만들었다. 바보처럼 성실했다.
사진을 보니 처음 만드는 계란말이가 분명했다. 옆구리는 다 터져있었고 어째 살짝 탄 느낌도 있었다. 나는 글로 오두방정을 떨며 칭찬을 했고 빨리 한 입 먹으라고 말했다. 꼬박꼬박 달리던 답글이 멈췄고 나는 멍하니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알람이 울렸다.
서두에는 고맙다는 말이 있었다. 한동안 너무 우울해서 집 밖에 나가지도 않았다는 울음과. 계란을 사려고 하는데 계란이 어디서 파는지도 모르고 있었다는 자책과. 요리라는 것을 처음 해 본다는 부끄러움과. 엄청 못생기고 간도 안 맞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는 안심과. 계란말이 한 조각 먹으면서 펑펑 울었다는 고백이 이어졌다.
나는 당신이 누군지도 어디에 사는지도 무엇을 하는지도 알 방법이 없었지만 꽤 큰 동질감을 느꼈다. 나는 몇 년 전의 나에게 말하듯 글을 썼다. 괜찮다는 말도 아니고 힘내라는 말도 아니었다. 계란말이는 엄청 맛있다는 멍청한 말이었다.
슬플 때는 괜히 밖에 나가 보라거나. 우울하면 맛있는 것을 꼼지락 거리면서 만들어 먹어보라거나. 그 작은 완성 하나가 꽤 큰 기쁨을 줄지도 모른다는 그런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런 것은 낯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괜히 댓글을 똑같이 하나 더 남겼다. 계란말이는 항상 엄청 맛있다는 멍청한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