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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지호 Dec 06. 2020

나로 살아가는 것이 권태롭다고 느꼈다

소화제를 먹어도 가슴 한 뼘이 답답했다. 괜히 계속 시계를 흘끗거리며 바라봤다. 숫자가 너무 빠르게 바뀐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몇 자 읽다가 내려놓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글도 영상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도수가 맞지 않는 안경을 쓴 기분이었다. 눈을 감고 오늘의 기분에 대해 생각했다. 특별히 오늘만 이런 감정에 빠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체 언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뻘 속에서 발버둥 치다 결국 숨만 간신히 쉬고 있는 모시조개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적당한 단어를 찾으려 머릿속을 헤집다가 결국 하나를 찾았다. 이것은 지루함이었다.


무엇을 해도 별다른 재미가 없었다. 좋아하는 것을 더듬어 찾았다. 하지만 막상 그것을 과연 좋아하긴 했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보통 이럴 때면 몇 주 내내 도보여행을 떠난다거나 철도 맞지 않는 김장을 한다거나 하며 활기를 찾아내곤 했었다.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색이 짙던 광기는 어디에선가 도축되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정육점 매대에 걸려있는 돼지고기처럼 축 널브러졌다. 세상 모든 것이 무채색으로 보였다. 몇 분을 고민하다가 나는 나로 살아가는 것이 권태롭다고 느꼈다.


어떤 재밌는 일을 하든 결국 내가 하는 것이었다. 나는 결국 나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성격도 행동도 생각도 이십몇 년을 살며 쌓아왔기에 새로운 것을 해봐야 결국 뿌리는 나였다. 몇 달 정도 타인으로 살아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부러워했던 당신 몇 명을 떠올리며 만약 내가 당신이라면 무얼 했을까 상상했다. 상상이 퇴폐적인 것에 다다르자 꽤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키보드를 두드리며 당신들에 대한 글을 썼다. 몸이 헤픈 남자와 마음이 헤픈 여자를 떠올렸다. 내 멋대로 대화와 행동을 써 내려가며 꽤 큰 쾌감을 느꼈다. 소설을 짓는 것은 잠깐 동안 신이 되는 것이었다. 적어도 그 시간은 권태를 느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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