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석지호 Dec 28. 2020

이름이 같은 당신을 만났다

이름이 같은 당신을 만났다. 희성으로 태어나 친척이 별로 없던 나는 처음 보는 당신에게서 이유 모를 친근함을 느꼈다. 양꼬치와 토마토 계란탕을 앞에 두고 빼갈을 주문했다. 토마토 계란탕과 빼갈은 내 대학 생활을 나타내는 두 단어였다. 만 원 한 장이면 남부럽지 않게 취할 수 있었다. 다만 손님을 대하는 메뉴로는 부끄러워 그럴 때면 양꼬치를 더 시켰다.

양꼬치가 돌아가며 맛있는 냄새가 났다. 우리는 우리가 만난 기막힌 우연에 대해 재밌어했다. 당신이 SNS에서 당신의 이름을 찾다가 궁금한 마음에 친구 추가를 누른 것이며. 친구 신청을 받은 나는 당신은 도대체 누구인지 신기한 마음에 이야기를 건 것이며. 수능을 보고 또 근처 학교에 온 것이며 하는 여러 사건들을 묶어 우연이라 말했다.


우리는 서로를 무어라 불러야 할지 난감해했다. 이름을 부르기엔 낯간지러웠다. 부름에 내 스스로 대답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빼갈을 기울였다. 빼갈은 빼갈이라고 해야 그 맛이 났다. 배갈은 너무 점잖았고 백주는 약아 보였다. 그래서 항상 빼갈이라 힘주어 말했다. 이처럼 배에 힘을 주고 말해야만 하는 단어들이 있었다. 당신을 앞에 두니 내 이름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았다.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나는 내 성을 싫어했지만 이름은 그럭저럭 좋아했다. 성은 끊을 수 없는 족쇄였지만 이름은 나 홀로 높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성과 이름을 붙여 불리는 것보다 이름만 불리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스스로 불러본 적은 없었다. 당신을 앞에 두고 나는 나를 부르는 연습을 했다. 기분이 묘했다.

조금 적적해진 후에 당신과 나는 핸드폰을 열어 전국의 같은 이름들에게 친구 신청을 했다. 생각보다 이름이 같은 사람들이 많았다. 시작은 같았지만 모두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당신은 키르기스스탄으로 가겠다는 말을 꺼냈다. 나는 벌겋게 취해 그곳이 어딘지 물었다. 내가 살아가야 할 길도 어디인지 모르고 있는데 웬 나라의 위치가 궁금했다. 바보 같은 일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나로 살아가는 것이 권태롭다고 느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