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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지호 Apr 06. 2023

목살 쌈장 볶음밥

꿈에서 깨 버릇처럼 시계를 바라봤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새벽 다섯 시였다. 일찍 깨는 버릇이 생긴 지는 꽤 되었다. 편안한 향이 나는 디퓨저를 꺼내어 두고 따뜻한 이불도 새로 사 덮었지만 별다른 효과는 없었다. 숙면에 효과가 좋다는 부스럭거리는 소리나 비 오는 소리는 꿈의 색깔을 바꾼다는 것 빼고는 평소와 다른 점을 찾기가 힘들었다. 오늘 운전할 일이 있을까라는 고민을 뒤로하고 클라우드 작은 캔 하나를 열었다. 미지근한 맥주는 의외로 주말 새벽과 어울리는 점이 많았다. 적당히 무기력하고 어느 정도 고독했다. 큰 베개에 기대 이불 품에서 홀짝이기에는 축 쳐진 온도의 맥주가 적당했다. 차가운 맥주는 졸음을 싹 가시게 할 것이 분명했다. 그럼 여느 때와 같은 고민을 다시 시작했을 것 같았다.


맥주를 머금다 보니 배가 고팠다. 무슨 음식을 해야 할지 이불속에서 곰곰이 생각했다. 어느 정도 자극적이지만 본격적이지 않은 요리가 먹고 싶었다. 야채를 씻고 싶지도 않았고 무언가를 썰어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것은 분명 보람차고 생기 있는 일이었지만 얼굴이 붉어진 주말의 새벽과는 영 관련이 없었다. 다섯 평 남짓한 공간에서 누리는 청승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많은 바지런함과 함께 하는 일이다. 가끔 날을 잡고 몸을 일으켜 적당한 재료들을 사 와서 정리해야 한다. 마늘을 까 꼭지를 따야 하고 대파는 적당히 썰어 휴지와 함께 보관해야 한다. 냉동해 둔 고기는 미리 꺼내 녹여야 하고 때로는 후추와 기름을 뿌려 둬야 했다. 음식을 해 먹고 나면 수북한 설거지 앞에서 내일의 나를 믿어야 할지 고심해야 했다. 그 모든 과정들을 해낼 용기가 없었다. 적어도 오늘은 현명해져야 했다.


프라이팬에 목살을 올렸다. 고기 구워지는 소리는 언제나 따뜻했다. 대형마트에서 싸게 산 허브솔트를 뿌리고 고기를 뒤집었다. 마트가 아니면 허브를 넣은 소금을 평생 먹어볼 일이 없었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하며 가위로 대충 고기를 잘랐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돼지고기는 가위로 잘라야만 제 맛이 났다. 어제 먹고 남은 밥과 쌈장을 꺼내 목살과 함께 볶았다. 야채를 함께 넣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적어도 오늘은 그러지 않기로 했다. 불을 줄이고 고기와 밥과 쌈장을 뒤섞으며 창밖을 바라봤다. 해는 아직 뜨지 않았다. 누군가가 차의 시동을 거는 소리가 들렸지만 애써 무시했다. 열심히 살고 싶지 않았다. 부지런히 사는 것은 어제저녁의 나라거나 내일 아침의 내가 하면 되는 것이었다.


적당히 눌어붙은 볶음밥에선 좋은 냄새가 났다. 프라이팬을 통째로 가져가 상에 올렸다. 밥을 볶던 숟가락으로 한 술 뜨려 할 때쯤 죄책감이 들었다. 몸이 일어나기 싫다고 아우성쳤지만 굳이 찬장에서 그릇을 꺼내 볶음밥을 담았다. 아주 좋은 그릇은 아니었지만 며칠을 고민해 고른 그릇이었다. 숟가락도 새로 꺼내 옆에 두었다. 그리고 밥 위에 고기를 올려 입에 넣었다. 음식은 그릇에 담아야 했다. 다른 사람과 먹을 때만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혼자 먹을 때는 그런 기본적인 것을 더 굳게 지켜야 했다. 요리하던 프라이팬에 대충 올려 먹는 것은 식사가 아니었다. 가끔 그럴 때면 먹는다는 기분보다는 욱여넣는다는 기분이 더 짙게 들었다. 대충 때우는 식사라도 최소한의 예의는 늘 갖춰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잠이 들 때쯤 어떠한 감정에 빠졌다. 그 감정을 표현하기는 어렵다. 목욕탕 냉탕에서 발을 헛디뎌 물을 많이 먹었을 때. 코가 맵고 귀가 먹먹한 그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식사는 음식을 그릇에 담아 먹는 것이라는 간단하면서도 답답한 규칙을 만든 것은 어린 시절의 나였다. 집안 어른이 엄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책꽂이 어딘가에 숨어 있었던 이름 모를 책에 나온 할아버지가 해 준 말이었다. 학교 가는 시간을 빼면 혼자 있던 시간이 많았던 나는 할 일이 없어 책을 읽고는 했다. 그리고 멋져 보이는 말들과 교훈이 되는 규칙들을 적어 이름 모를 할아버지가 내게 해 준 말이라는 상상을 했다. 홀로 크는 사내아이가 가장 그리워하는 것은 멋진 남자 어른의 잔소리였다. 주변에 제대로 된 남자 어른이라고는 찾을 수 없었던 어린아이는 스스로 잔소리를 하고 또 들으며 공허한 시간을 씹었다.


식사를 마쳤지만 아직 새벽이었다. 시계를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프라이팬과 그릇을 물에 담가 두고 이불속으로 도망쳤다. 목살 탓인지 쌈장 탓인지 밥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분 좋게 노곤했다. 아마 맥주 덕분일지도 몰랐다. 빈 맥주 캔을 흔들다가 새 캔 하나를 손에 잡았다. 딱 한 모금이 필요했다. 한 캔은 너무 많았다. 밥을 먹기 전에 한 모금만 남기지 못했던 것을 후회했다. 생각은 길었지만 행동은 빨랐다. 맥주는 입에 남은 기름기를 닦아 냈다. 텁텁함을 없애려면 미지근한 것보다 차가운 것이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상쾌하고 청량한 느낌이 필요했다. 그래도 주말 새벽 침대 위의 맥주는 미지근해야만 했다. 그것은 아주 당연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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