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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 소피아 (3)

불가리아식 김치찌개

by 석지호

정식 출간 예정입니다 !

https://tumblbug.com/balkantravel


“한식 드시러 가실래요?”


오랜만의 낮잠 속에서 정신을 재부팅하는 데에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마침 배가 고파서 나는 재훈과 동행하기로 했다. 한국어를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서 한국에서 도피한 주제에 한국 사람과 한국 음식을 먹게 되었다. 갑자기 대화가 그리웠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에게 주어진 상황 자체가 그저 흥미로울 뿐이었다. 나는 우연이 가져다주는 어떠한 운명 같은 것에 꽤나 나약하게 이끌려 대응하고는 한다.



구글 맵에서 검색한 한식 음식점으로 가는 동안 재훈과 몇 가지 대화를 했다. 그는 꽤 오랜 기간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있었다. 젊음의 자연스러운 치기 어림이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큰 도로를 거침없이 무단횡단 하는 그를 보며 잠깐 멈칫했다. 아무도 없는 어두운 지름길로 들어서는 그를 보며 살짝 당황했다. 문득 나는 내가 나이가 들었다는 생각을 했다. 몇 년 전의 나라는 인간은 세 시간째 멈춰버린 기차를 버리고 인도 어딘가의 기찻길을 무단횡단 하고 있었다. 또 살면서 발레 한 번쯤은 봐야 하지 않겠냐는 충동적인 생각에 비 오는 밤의 러시아 골목 어딘가를 뛰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나의 청춘은 어느 정도 낡아 빛이 바랬다.


나는 나의 과거 앞에 마주 앉아 떡볶이와 김치찌개 같은 것을 주문했다. 재훈은 한동안 한식다운 한식을 전혀 먹지 못해 매운 것에 주린 모양이었다. 그 감정 또한 내 청춘 어딘가의 기억에 남아 있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떡볶이는 다진 마늘이 빠져 있었는지 영 밋밋했지만 김치찌개는 나쁘지 않았다. 별로 기대하지 않고 주문했던 간장치킨은 최고였다. 출국 전에 야식으로 먹었던 교촌치킨의 맛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한식이 전혀 그립지 않은 사람과 한식을 너무도 그리워하는 사람은 음식들에 대해 품평하며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과 잘 대화하지 못한다. 사실 오래 본 사람과도 잘 대화하지 못한다. 아주 가끔 편하고 또 진솔하게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내 인생에도 나타나곤 한다. 그 사람들의 공통점은 아무리 기억을 반추해도 알 수 없었다. 재훈은 그런 우연함의 일치는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어떤 일인지 그와 계속 대화하고 싶었고 가장 좋았던 장소가 어디냐는 질문을 짜내어했다. 몇 년 전 했던 어색해서 죽을 것 만 같았던 소개팅에서의 질문이 도움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이집트의 다합을 첫 순서로 꼽았다. 처음 들어보는 곳이었다. 재훈은 어느 정도 달변가에 속하는 인물이었기에 자신의 경험과 이유를 재미있게 말했다. 나는 인도의 카주라호와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말했다. 세 번째 장소인 한국의 이태원은 입 밖으로는 내지 못했다. 나는 늘 내가 좋아하는 것과 그것을 좋아하는 이유를 남들에게 설명하기 부끄러워하는 인간이다.


이태원에는 한국에 딱 두 군데인가 하는 이슬람 모스크가 있다. 문을 들어서려면 반바지를 입어서는 안 되는 곳이다. 내가 동경하던 사람은 청바지를 입고 있었고 나는 하필 흰색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모스크를 구경하러 들어선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문 앞에 낡은 평상을 찾아 앉았다. 평상은 조금 더러웠지만 햇빛은 따뜻했고 도로시밴드의 소풍이라는 노래가 어디선가 흘러들었다. 그 짧은 기다림의 순간이 내 인생에 손에 꼽는 행복한 기억 중 하나였다. 나는 가끔 삶이 벅차면 그 기억을 재생하며 아로마 테라피에 좋다는 야돔을 코에 쑤셔 넣곤 한다.


이러한 너절한 이유는 때로는 너무나 감성적이라서 설명하기 전에 벌써 홍조가 돈다. 그래서 카주라호에는 일주일 내내 구경해도 재밌는 카마수트라 사원이 있다고 했고 상트 페테르부르크에는 세상에서 제일 멋진 거리와 그보다 더 멋진 그림들이 있다고 했다.


“여기는 제가 낼게요.” 내가 말했다.


“네? 아니에요. 여기 은근히 비싸요. 저랑 같이 내요.” 재훈이 말했다.


“괜찮아요. 뭔가 제 과거를 보는 것 같아서 그래요.”


결제를 하고 나니 그의 말이 이해가 조금은 되었다. 가격은 사실 혼자 내기엔 조금 부담스럽긴 했다. 하지만 내 치기 어린 젊은 시절이 온갖 감정을 느끼며 세상을 여행했을 때를 떠올리게 해 준 그가 고마웠을 뿐이었다. 원래 모티프가 되는 사람은 본인은 전혀 모르지만 남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 법이다. 식당 1층에서는 월드컵 결승전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르헨티나가 드디어 우승컵을 들어 올린 것 같았다.


호스텔에 들어와서는 키릴 문자 공부를 했다. 적어도 간판이나 이정표라도 읽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면 그저 부딪히고 감각에 의존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몇 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나는 모르는 것을 두려워하고 익숙해짐을 사랑하게 되어버리고 만 것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알파벳을 하나하나 읽어가는 과정은 꽤나 재밌었다. 몇 가지 발음하는 것이 어려워 선생님이 필요해 호스텔 로비로 내려갔다. 몇 명의 사람들이 소파 위에서 축 쳐져 있었다. 앉아 있는 것도 아니고 누워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그들이 불가리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나는 키릴 문자를 발음할 수 있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 그저 튀르키예에서 왔다는 친구에게 튀르키예 음식에 대한 자랑을 한 시간 정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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