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함

나의 공허함을 타인으로 채우려 하지 말기

by Pause

혼자가 된 이후 가장 설레는 마음으로 아이와 함께 유학을 가리라는 다짐으로 달려왔다. 2019년은 눈코 뜰 새 없이 빽빽이 채워진 업무와 공부로 일분일초를 아껴가며 준비했다. 2020년은 코로나와 함께 불합격 소식을 듣고 잠시 체념을 한 반년과 다시 일어선 반년으로 채웠다. 그리고 2021년 드디어 미국 박사 합격 소식을 들었다. 언젠가 아이가 크면 함께 유학 갈 거야, 남들 부럽지 않게 유학시켜줄 수 있는 엄마가 되자라는 막연한 바람이 현실로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아직 실감은 안 난다. 아이에게 우리는 미국을 가야 해 하고 넌지시 말했다.


아이는 초등학교 6학년 13살, 조금씩 사춘기가 오는 거 같다.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엄마보다 친구를 훨씬 더 좋아하고 게임을 많이 좋아해서 스마트폰 실랑이를 벌이고 주장이 강해졌다. 예전과 다르지만 아들의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자연스러운 성장'에 안도한다. 아이가 엄마만 찾았다면 더 걱정했을 거야 라며 스스로 위로한다.


아이가 공부에 소홀히 하거나 숙제를 잘 안 하면 엄마의 손길이 부족해서 인건 아닌지, 함께 할 수 없던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괜한 죄책감이 들었다. 어쩔 수 없었던 결정, 아이 앞에서 자주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보다 그리고 우울감에 빠져 울고 지내는 거보다 나은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가정을 유지했다면 정신병을 얻었을 것이다. 지금도 부족하지만, 나름 열심히 버텨내며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Family First. 가장 소중한 삶의 가치는 가정이지만 지속시키지 못했다. 남의 일이 내 일이 될 수 있다는 걸 경험했다. 그리고 언젠가 새로운 가정을 만들겠다는 꿈이 있다.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가정. 하지만 아직 시기가 오진 않은 거 같다. 그보다 엄마로서 아이가 성인이 되기까지 독립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책임감이 강하다.


7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중요한 시기였다. 경력단절이라 일자리도 찾아봐야 했고, 홀로서기 준비가 바빠 아이를 오롯이 케어하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지내야 했고 일주일에 한 번씩 주말에 함께 했다. 매일 붙어 있던 아이와 떨어진 하루하루가 너무나 괴롭고 힘든 시기였다. 일하면서 아이를 키우기란 현실적 한계가 있었다. 10살이 넘으면 좀 더 자리가 잡힐 거야. 아이에게 중요한 시기에 한 방을 마련해주자.


그리고 그 한 방이 마련된 지금. 아이는 유학을 거부한다. 친구가 너무 좋다고 한다. 아이를 설득하는 것이 큰 과제가 될 거라고는 예상도 못했는데. 큰 복병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중에 아이가 오는 것은 더 어려울 거 같다. 강압적 조기 유학이라고 아이를 나중에 데려가라는 아이 아빠도 설득해야 하니 이민 같은 장기 유학을 준비하는 것도 마음이 심란한데 더 복잡하다.


쿨해져 보자 라는 생각을 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다 해봤으니 딱 1년만 엄마랑 지내보고 정말 아니다 싶으면 한국으로 가렴. 중1은 자유 학년제라 지금 갔다 돌아오면 친구들과 같은 반이 될 수 있지만, 나중에 왔다가 간다면 친구들보다 한 학년 늦게 진학해야 한다 등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말해주며 가까스로 설득했다. 불확실성. 사람들 설득하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다. 정확히 말하면 가족을 설득하는 일이 참 어렵다.


조금 내려놨다. 아이가 1년만 있다면 조기 어학연수를 한 거라 생각하자. 1년 더 있겠다고 한다면 계획대로 된 것이다. 하지만 간다고 한다면 그때는 내 삶을 사는 거다 하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조금은 나았지만 주말 내내 피로감과 무기력이 찾아왔다. 넷플릭스 영화 세편과 바닐라 아이스크림, 프링글스로 위로했다. 건강하진 않지만 빠른 치료제 같다. 이틀 동안 여행도 다녀왔다. 다시 돌아오니 조금 공허한 마음이 든다. 누구에게 연락해볼까 했지만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따뜻한 샤워를 하고 물을 마시고 글을 쓴다.


내일부터는 조금 더 건강한 생활로 돌아가 보자 결심해본다. 일하고 들어오면 혼자 있는 공간에서 공허함이 밀려온다. 화려하고 바쁜 일을 하고 나면 극대화된 대조로 더욱 공허한 기분이 든다. 여러 해동안 여러 날을 보내며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은 그 공허함을 타인을 통해 채우려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나에게 집중하고 내 기분을 이해하고 솔직해 짐으로써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제 본격적인 준비를 해보려고 한다. 한국에서의 4개월 남짓 준비 기간. 어리지도 않지만 늦지도 않은 30대 후반에 가는 유학. 그 여정이 어떨지 앞으로 삶의 캔버스를 어떤 색으로 채워나갈진 아직은 모른다. 앞으로의 날을 기록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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