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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se Oct 14. 2023

연구하는 일이 다른 이유

Difficult to understand academia

"아카데미에 없는 사람들은 아카데미에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기가 어려워"

박사 과정 학생들이 자주하는 얘기다. 대부분 연구 얘기를 매일 하기는 싫어하지만, 연구 얘기를 공감해줄 사람들도 학계에 있는 사람들이다.


박사 유학 전에 14년 정도 일을 했다. 

학부 졸업하고는 대기업 상품기획/해외마케팅 3년, 아나운서 5년, 창업 7년 정도. 

다양한 일을 했지만 연구하는 일은 좀 많이 다르다. 그래서 아카데미아에 있는 사람/일을 이해하기도 어렵고 현장에 있는 사람/업무 간의 갭도 있는 거 같다. 


박사 시작한 지 이제 3년 차다. 내가 경험한 아카데미아가 다른 이유를 크게 다섯 가지로 꼽는다.


1. 물리적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처음에 아카데미아 글을 쓰기 시작하는데 구성도 언어도 너무 달랐다. 일부러 어렵게 쓰나 싶다. 솔직히 재미도 없다. 누가 읽을까 싶은 논문들이 많다. 하지만 논문을 읽어야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시간을 많이 들여서 글을 읽었다. 그리고 조금은 더 연구 논문들에 친숙해진다. 글을 오래 읽어도 인풋 (input)에 불과하다. 아웃풋(output)은 글인데 글을 많이 읽어도 한 단락 쓰는 것이 어려운 일도 있다. 엉덩이힘이 필요한 곳이다. 오래 앉아 있고 읽은 만큼 그나마 글을 쓰거나 아웃풋이 보이기 시작한다.


2. 성과가 잘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시간과 공을 들여 글을 다 써도 아카데미아는 끊임없는 평가를 받는 곳이다. 리뷰 피드백을 준 것에 대한 감사함과 동시에 좌절감도 같이 온다. 특히 논문을 투고하고 Review&Revision을 하면 끊임없는 긴 과정 속에 내가 연구를 평생 할 수 있을까, 나는 연구를 잘하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자주 하게 된다. 빠르면 1년 혹은 길면 5년-10년 (한 교수님이 출간까지 10년 걸렸다는 걸 듣고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보통 1-2년 정도 출간까지 걸린다. 


두 번째 이렇게 출간이 되었을 때 굉장히 기쁘고 성취감이 든다. 그 맛에 연구를 한다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연구를 많이 한다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다. CV와 구글 Scholar, Research gate 등 아카데미아 사람들이 아는 곳들에 실적이 쌓인다. 물론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정년보장(tenure) 교수가 되고 한 분야에서 전문가로서 지식을 창조하고 나눈다. 그리고 대가가 될 수 도 있겠다. 하지만 스타트업을 exit 했을 때처럼 엄청난 금전적 보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동안 일했던 일 중에 성과가 극명한 일은 진행자의 일이다. 생방송 진행이나 행사 진행은 시간이 정해져 있고 끝나고 나서도 바로 끝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이건 방송의 매력이다. 


3. 글 쓰는 작가처럼 오롯이 나의 창의력과 작문이 필요하다. 

글을 쓸 때 가끔 접신하는 순간이 있다. 글이 잘 써 내려가는 것이다. 이 접신을 만나기까지 많은 시간을 앉아있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회사에서 일을 하면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있어서 이메일이 오가며, 회의를 하며, 일을 하면서 업무가 진행이 된다. 아카데미아는 같이 연구를 해도 페이퍼를 쓰는 순간은 오롯이 나의 일이다. 내가 글을 한 자라도 안 쓰면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나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창의력과 연구 진행, 글 쓰는 실력들이 있어야 글이 조금이나마 빨리 나올 수 있다. 


4. 느리다. 느려. 너무 느려.

스타트업은 자금이 떨어지기 전에 매출을 올리던 상품을 시장에 출시(launching)해서 반응은 보던 투자를 받던 빠른 결정과 실행이 중요하다. 아카데미아는 상대적으로 너무 느리다. 왜 이 연구가 중요하고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썰(Rationale)을 기존 연구 결과를 읽고 증거로 대면서 써가면 지도교수님이 리뷰를 해준다. 고친다. 다시 쓴다. 리뷰받는다. 이렇게 시작 전부터 느리다.


연구가 진행되다가 데이터 수집의 한계 등 다양한 이유로 중단되는 경우도 있다. 거기다 글을 다 써놓고 나면 마무리 작업 (refining)을 하는데 이 것도 오래 걸린다. 간혹 지도교수님들 중에 성향에 따라 이제 준비됐다고비교적 빠르게 submit 하는 사람도 있고, 세월아내월아 계속 수정만 하시는 분들도 있다. 질이 높을수록 accept 되는 확률이 높기 때문인 건 이해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가끔 논문 출간은 로또처럼 랜덤인 것 같기도하다. 어떤 리뷰어를 만나느냐 아니면 저널과 핏(fit)이 맞느냐 아니냐에 따라서도 다르기 때문이다. 


5. 몰입의 정도

논문을 쓰는 일은 뇌가 엄청난 몰입을 해야 한다. 가령 커피숍에서는 이메일을 쓰거나 가벼운 글을 쓰거나 수정 (edit )을 할 수는 있어도, 본격적으로 창조적 힘으로 써 내려가야 할 때는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음악도 꺼야한다. 휴대폰은 멀리 놓거나 알람을 꺼놓는다. 그동안 했던 일들 중에 가장 높은 몰입도를 요구한다. 나는 아침에 일이 잘 되는 편인데 오전에는 뇌를 많이 쓰는 글쓰는 일을 할 수 있고, 오후에는 비교적 단순 업무를 해야 한다. 몰입하는 느낌이 좋기도 하지만, 굉장히 피곤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아에 있는 혹은 있고자하는 이유는 자유롭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걸로 실력을 인정받고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시간도 비교적 자유롭고 매일 출근할 이유도 없다. 심지어 방학도 있다. 독립성(independence)과 자율성 (autonomy)에 가치를 높이 두는 사람이라면 아카데미 삶을 좋아할 확률이 높다.  

또 컴퓨터만 있다면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일이다. 평생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전문가로서 한 분야에 지속적으로 연구를 한다면 긴 세월이 지났을 때 높은 성취감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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