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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se Oct 09. 2022

지도 교수의 격려

Encouragement from the Advisor

어떤 일을 선택하던 장점과 단점, 양면성이 공존한다. 이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하게 일을 하다 보면 피로감과 번아웃이 오게 된다. 최근 (코로나 이후 후유증인지는 몰라도)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이나 읽고 있어도 글이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는 집중력 저하, 브레인 포그 (Brain Fog)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럴 땐 검색을 해본다.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산책을 하라고 한다. 내가 보기엔 무기력이 들 때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잠시 내려놓고 쉬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굳이 뭘 하면서 극복을 해야 할까. 다음은 이곳은 상담 시스템이 있어서 간단하게 챗을 해보았다. 자꾸 인적사항을 묻는다. 기밀이라면서 전화번호, 이름, 학생 번호 등을 자꾸 물어봐서 그만뒀다. 마지막으로 지도교수와의 미팅을 했다.


아카데미로 오기 전에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큰 범주 안에서 회사 조직 안에서의 일, 방송가 프리랜서, 그리고 창업을 하고 커뮤니케이션 박사과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곳 시스템에 적응하면서 세 가지가 최근 피로감의 원인이라고 생각했고 지도교수와 상담했다. 첫 번째, 끊임없는 주관적 평가이다. 두 번째, 기다림이다. 세 번째, 업무량과 내 영어와 글쓰기에 대한 의구심이다. 


지도 교수는 9년 7개월 정도 학계에서 일해왔는데, 공감해주며 얘기해줬다. 이곳의 문화이고 아직도 경험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경험담도 들려줬다. 학교에 오기 싫은 이유 중 하나는 시험과 성적이 아닐까 싶다. 이곳은 항상 평가를 받는다. 물론 사회에서도 평가를 받지만 이곳에서의 평가는 주관적인 피드백과 함께 업무에 대한 보상이 적다는 점이다. 수업 시간에 페이퍼를 써내서 B를 받아도 주관적인 잣대이고 그에 대한 피드백도 교수 입장이다. 교수가 돼도 끊임없이 평가된다.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평가를 받고, 저널과 학회에 내는 페이퍼도 항상 평가를 받는다. 중요한 차이는 사회에서는 평가를 받는 과정 중 월급이나 좋은 평가에 대한 인센티브 같은 보상이 있지만, 학계는 그렇지 않다. 이곳 사람들은 학교 외에 실제 세계에서 일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좀 특이하다고 말해줬다. 주장이 세고, 자기가 옳다는 전문가들이며, 질투와 시기도 만연한 곳이라고 얘기해줬는데 지도 교수가 본인이 있는 곳을 너무 실랄하게 비판해서 웃음이 났다. 


두 번째, 이곳은 시간이 느리다. 페이퍼를 내면 피드백을 받기까지 오래 걸려서 어느 정도 잊고 있어야 한다. 빨리 거절되면 빠른 회신에 고마워해야 할 정도이다. 저널에 게재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최근 한 달 전에 낸 학회 페이퍼에 대한 reject이 있었고, peer-review journal은 아직도 under review 중이다. 지도 교수는 이곳은 랜덤 게임이라고 했다. 그러니 될 때까지 해보는 것이 좋고, 안됐다고 해서 안 좋은 것이 아니라 로터리 같은 것이라고 했다. 거절되었기 때문에 조금 더 좋은 학회지에 게재되는 일도 있었다고 했다는 얘기부터 학교 밖 세계는 Time frame이 있지만, 이곳은 없기 때문에 신경을 많이 쓰지 말라고 했다. 


 마지막 졸업 후 Faculty가 되려면 학회지에 대한 게재가 있어야 하는데 (publish) 그 타임라인을 역으로 생각하면 지금 페이퍼를 많이 써서 내야 하는 시기이다. 하지만 수업 course work에 대한 과제와 리딩이 많아서 수업이 불필요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우선순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봤다. 지도 교수는  우선 너무 많은 일을 해서 무리하지 말라고 해줬다. 길게 봐야 하는데 너무 무리하면 번아웃이 오기 쉬운 과정이라고 했다. 교수님한테 번아웃이 왔었냐고 물어보니 올 뻔했다고 했다. 페이퍼도 천천히 오래 걸려도 괜찮다고 했다. 중요한 건 속도보다 질이라고 했다. 그리고 내 페이퍼와 글쓰기에 대해 인증을 해줄 수 있다며 많은 격려를 해줬다. 


미팅 후 한결 가벼운 마음이 되었다. 배워가는 과정이기에 실수를 하고 부족한 부분이 있으니 채워갈 수밖에 없다. 밖에서는 내 분야에 대해서 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10년 이상의 긴 시간을 보냈지만, 이곳에서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고 배워가는 단계라는 점을 간과하기 쉽다. 매일 꾸준하게 걸어가는 것, 그리고 학계 문화에 적응해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나중에 이 과정을 겪을 후배들에게 시원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지도자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도 교수가 내 편에 서서 얘기를 해줄 수 있다는 건 당연할 수도 있지만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과거 석사 과정에서 경험했기에 참 든든하고 고마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 학계에 온 이유라면, 내 분야에서의 전문성을 키우고 그로 인한 자율성을 얻게 된다는 점, 지적 충족과 인정 욕구의 충족, 자유로운 업무 시간과 Tenure 후 직업의 안정성, 마지막으로 하나 더 보태면 미국에서 외국인이라는 신분을 보호해 줄 큰 울타리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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