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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피 May 28. 2023

손톱



 어린이집에서 물감놀이를 했는지 딸의 손톱에 때가 낀 것처럼 보였다. 깎아줘야지 하고 생각만 하고 이틀이 지나버렸다. 손톱을 깎아줘야겠다는 생각은 불현듯 떠올랐기에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남편에게 딸의 손톱을 깎아야 한다 말을 하고 나는 한 손에 손톱 가위를 들었다. 딸의 손톱은 여려서 손톱 가위를 쓴다. 언제쯤 손톱깎이를 쓰게 될까? 그날은 처음으로 손톱깎이를 쓰는 날이라고 기록해 둘까? 손톱 가위가 있다는 것도 이것의 용도도 딸이 태어나 알게 되다니, 역시 아이를 낳고 나면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게 맞나 보다.  


   

 딸의 손톱과 발톱을 가지런히 깎아내고 남편과 딸이 이비인후과 가는 것을 배웅했다. 글을 써야지 하고 책상에 앉았다가 문득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 내 손톱을 깎아준 할머니가 생각나 전화했다. 나는 알면서도 ‘할머니, 나 어렸을 때 할머니가 손톱 깎아줬지?’하고 묻는다. 할머니는 손톱이며 발톱, 내 머리카락도 잘라줬다는 걸 얘기해 준다. 나도 기억난다. 바가지를 머리에 씌워 마당 한 구석에서 할머니가 가위로 잘라낸 날이.      



 할머니와 짧은 통화가 끝나고 알 수 없는 감정이 눈물을 나게 했다. 사실은 할머니의 대답을 듣는 순간부터 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았다. 통화가 빨리 끝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다섯 살부터 혼자서 손톱을 깎을 수 있게 되기까지의 시간이 얼마였을지, 혹은 몇 년이었을지 모르겠다. 할머니는 내가 스스로 손발톱을 자를 때까지 천천히 기다려 줬겠지. 할머니는 그런 분이니까.      



 칠십이 넘은 나이에도 내 손발톱을 깎아주던 할머니의 손길이 나의 손끝에도 여전히 남아서일까. 나는 내 손톱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손톱 역시 깎아주는 걸 좋아한다.      



 밭일하랴, 목장갑 하나 끼고 호미를 쥔 채 흙을 매만지던 손. 해가 질 때까지 계속된 할머니의 일은 밤이 되어도 가족의 저녁 식사를 차리는 것이 남아 쉴 틈이 없었다. 그래도 제법 커서 설거지를 번갈아 가며 할 수 있게 된 두 손녀 덕에 설거지는 면하게 된 할머니. 나는 설거지가 끝난 날이나 저녁밥을 먹은 후에는 항상 할머니의 손톱과 발톱을 보며 오늘은 깎아야 하는 날인가 살폈다.      



 고단함이 무뎌진 손. 할머니 손은 그랬다. 굳은살이 손바닥 전체에서 느껴질 만큼. 할머니 손톱은 항상 깊숙이 흙이 남아 있었다. 손을 씻어도 씻겨나가지 않은 채로. 나는 그런 할머니의 손을 잡고 손톱 깎는 날이 되면 내가 잘 안 쓰는 큰 손톱깎이를 찾았다. 할머니의 손톱은 내 손톱과 달리 두께도 두꺼웠고 무척이나 단단했다. 내가 쓰는 건 할머니에게 맞지 않았다. 손톱깎이 하나에도 누군가의 고생스러운 삶이 보였다.      



 대학에 다니기 위해 섬을 떠난 이후 할머니의 손발톱을 깎아주는 건 더 할 수 없게 되었다. 문득 명절이나 휴가가 되어도 할머니의 손발톱을 신경 쓰지 않고 있다는 걸 내 딸의 손톱을 깎다 알게 되었다.      



 8월, 친척들과 다 같이 할머니와 함께 여름을 보내기로 했다. 가기 전날, 할머니 손톱을 깎아주던 손톱깎이를 챙겨 가야겠다. 가서 우리 할머니 손톱이며 발톱을 유심히 봐야겠다. 예전처럼 저녁을 먹고 설거지하고 와 티브이를 보고 있는 할머니 옆에 앉아 손톱을 깎아주던 때처럼 손톱을 깎아드리고 싶다. 그런 날이 좀 더 오래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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