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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좋은 동물 애니메이션을 감상했다. 영화 플로우(flow)는 고양이가 주인공이며, 대사가 없어 기존 틀에서 벗어난 점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나는 좀 더 다른 관점으로 보고 싶다. 이 영화에는 언어가 없는게 아니다. 동물들이 인간의 언어를 쓰지 않을 뿐, 동물들의 언어는 나온다. 그러니까, 이 영화가 주목받아야할 진짜 이유는 '대사가 없는 영화'가 아니라 '동물의 언어로 표현된 영화'가 맞는 것이다.
동물의 언어
<저의 보호자는 고양이입니다> 책을 읽은 독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몇차례 받은 적이 있다.
"말 못하는 동물의 생각을 어떻게 알아내세요? 답답하지 않나요?"
물론,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사람처럼 깊이 있는 대화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동물이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감정인지는 충분히 비언어로도 알아낼 수 있다. 우리는 소리의 언어를 너무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진심과 진실은 말보다 행동에서 나오는 법이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충분히 시선을 낮추고 그들의 모습을 천천히 관찰한다면 그들의 서사를 쉽게 읽어낼 수 있다. 영화 플로우(flow)를 감상하며, 몰입감 있는 전개에도 놀라지만 동물의 서사를 이해하는 자신에게 감탄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이런 작품을 기다렸다. 고양이가 사람처럼 걸어다니는 모습 말고, 사람의 언어를 쓰는 것도 말고 정말 고양이답게 하품하고 하악질하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 그게 진짜 고양이가 주체가 되는 영화 아니겠는가
선으로 이루어진 세계
"숲속의 모든 것은 말 그대로 함께 접혀 있다. 무리 지어 있는 나무들 사이에서 한 나무가 어디에서 끝나고 또 다른 나무가 어디에서 시작하는지는 헤아리기 어렵다" -조응 中
사회인류학자인 팀 잉골드는 우리의 세계는 선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우리는 끝도없이 이어져 있는 세계와 끊임없이 조응하는 것이다. 이야기는 끊임없이 반복되며 순환된다. 그 속에서 매 순간 역동적으로 동참하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영화 플로우(flow)에는 검은 고양이, 골든 리트리버, 카피바라, 여우원숭이, 뱀잡이수리가 나온다. 이들은 갑작스런 대홍수에 유일한 생존공간인 낡은 배에 올라타 험난한 파도를 헤쳐나간다.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눈을 뗄 수가 없을만큼 상황이 극적으로 흘러간다. 낡은 배에 올라탄 동물들은 모두 하나같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러나 생존을 위해 그리고 더 나아가 함께 살기 위해 차이점을 극복하고 조우하는 모습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나는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저 불쌍한 고양이에게 더 이상 불행한 일이 닥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나의 기대와 달리 영화 내내 고양이는 물에 빠졌다가 살았다가 다른 동물들에게 위협을 당했다가 다시 화해했다가 혼자가 되서 정처없이 떠돌다가 잠시 평화를 되찾았다가 갑자기 다시 떠내려갔다가를 반복한다. 이건 마치 자연 재해 속에 정처없이 떠도는 한 마리의 실제 야생 고양이의 삶을 그려낸 것 같았다.
영원한 반복 속 작은 변화들
영화는 수미상관 구조를 이루고 있다. 고양이가 강가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으로 시작해서 친구들과 강가를 바라보는 모습으로 끝이난다. 또한, 자연은 한 순간에 물에 잠겼다가 또 한 순간에 물이 메마른다. 자연재해가 계속해서 순환반복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모든 설정을 과하게 표현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그 모든 자연재해에는 어떠한 원인도 없다는 것이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과장되게 표현하면서 자연현상의 반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자연재해에는 어떠한 원인도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찾아 온 불가항력 앞에서 수 많은 생명들이 흘러간다. 모든 사람들은 이렇게 휘몰아치는 세상 속에서 정처없이 흔들리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 흐름 속에서 조금의 변화를 누리며 살아갈 수는 있다. 영화에서 검은 고양이가 친구들을 만나 서로 연대했던 것처럼.
영화는 계속해서 순환되는 불가항력 세상을 과감히 보여준다. 우리는 그 자연재해 앞에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가 현실적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 연대하며 의미있는 작은 변화들을 이루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인생임을 영화는 말한다.
말하지 않고 표현하기
소설을 공부하는 작가에게 이 영화는 굉장히 큰 귀감이 되었다. 이 영화는 동물들의 모험 한 번으로 엄청난 메세지를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심지어 인간의 언어는 단 한마디도 쓰지 않은 채 말이다. 나는 오늘 또 배운다. 말하지 않고 표현하는 것이 진정한 예술임을. 또한, 동물을 통해 철학을 말할 수 있음에 또 한 번 감탄한다. 나는 정말 아직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