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엄마의 탄생
그녀의 이름은 김광자(金光子)였다. 그때 당시, 여자 아이에게 ‘자’ 자 돌림을 쓰는 게 유행이었고, 아들처럼 귀한 아이로 자라기를 염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기도 했다.
광자 씨는 이 씨 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치를 떨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이 씨 성을 가진 이들과 동고동락하고 있는 게 원인이었다. 그들은 김 씨 성을 가진 광자 씨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광자 씨는 한 지붕아래 살면서도 소외감을 느꼈다. 늘 다수가 인정받는 게 세상 이치였다. 엄마는 이 씨 성을 가진 토끼 같은 두 딸을 키우면서 오랫동안 치밀한 전략을 짰다. 달래고 토닥이고 쓰다듬으면서 자신의 편이 되기를 기대하며 키웠다. 연년생 두 딸을 다 키울 때까지 임신한 기간까지 더하면서 20년 이상이 걸렸다. 하지만 딸들은 커갈수록 자신보다 남편을 닮아감을 절실히 느꼈다. 슬픈 영화를 볼 때면 광자 씨 혼자서만 눈물을 흘렸으며 모든 걸 한 지붕아래에서 함께하고 싶은 자신과는 다르게 이 씨 성을 가진 그들은 뿔뿔이 흩어지는 걸 좋아했다.
언젠가부터 광자 씨에게 눈물이 많아지는 시기가 찾아왔다. 엄마는 톡 하고 건드리기만 해도 훌쩍일 정도였다. 아침밥을 하면서도 훌쩍, 밥을 먹다가도 훌쩍, 시큰둥한 대답 한 마디에도 설움이 폭발했다. 광자 씨는 그럴 때마다 이런 말을 버릇처럼 입에 달고 살았다.
“나는 왜 김 씨인 거야. 서러워서 정말”
결국 광자 씨의 멈추지 않는 서러움 때문에 이 씨 성을 가진 이들의 긴급회의가 이루어졌다. 역사적인 날이었다. 이 씨가 모두 다 한 자리에 모이다니. 거의 30년 가까이 처음 있는 일이다. 이 씨 대장인 아빠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너희 엄마는 왜 그러는 거야?”
아빠는 ‘너희’라는 말을 붙여서 마치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듯한 뉘앙스를 딸들에게 비췄다. 피가 섞이지 않은 자의 비겁한 변명과 회피였다. 그렇지만 그의 피와 성까지 물려받은 딸들도 지지 않았다.
“그건 한 침대 쓰는 사람이 알아야 하는 거 아냐?”
딸들은 살 붙이고 살아온 정을 들먹였다. 어쨌든 법적으로도 광자 씨의 보호자는 아빠가 맞았다. 이 씨 집안싸움은 꽤 길어졌다. 결론은 ‘갱년기’로 합의에 이르렀지만 원인을 아는 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걸 그 후에야 깨달았다. 왜냐하면 결과에 대한 대응책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누구도 대응책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혹여나 그것이 자신의 책임과 의무가 될까 봐 그 누구도 쉽사리 의견조차 제시하지 않았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입을 다시 연건 연희 씨였다. 역시나 한결같은 해결책을 제시했다.
“한의원 좀 데려가봐. 필요하면 약도 좀 지어오고”
탁.
식탁 위에 신용카드가 놓였다. 연희 씨는 늘 가장 편하고 확실한 해결책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가장 큰 무기가 무엇인지도 알았다. 항상 연희 씨는 자신의 몫을 스스로 제한했으며, 그 이상은 다른 이들의 몫이라 생각해 왔다. 돈은 그랬다. 가장 필요했지만, 가장 부족한 걸 채워주지는 못했다. 결국, 그 부족함을 채우는 건 딸들의 몫으로 남았다.